과수원 옆 흙집에서 황금 같은 귀농 생활을 영위하는 경북 군위 이용우 씨(49)
이용우 씨는 자신을 ‘사과홀릭’이라고 표현한다. 사과를 사랑해 사과 농사까지 짓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심한 중독은 없을 터다. 꿈에 그리던 흙집까지 지어놓고 나니 어느새 귀농 9년 차에 접어들었다. 맛있는 사과를 직접 생산하는 기쁨은 물론 부부 금실까지 좋아졌으니 이만하면 ‘황금 귀농’이라는 그의 삶을 찬찬히 풀어놓는다.
스마일사과의 맛있는 웃음
이용우 씨와 그의 아내 김미경 씨는 자신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과일에 ‘스마일 사과’라는 브랜드를 내걸었다. 그들의 미소가 스며든 까닭일까. 스마일사과는 품질 좋은 사과라는 입소문을 탔다.
“우리 가족은 사과를 무척 사랑합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박스로도 모자라 자루째 사 놓고 먹었어요. 사과 실컷 먹고 싶어서 사과 농사짓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사과의 천국인 경북 일대에서 유년을 보낸 이 씨는 사과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있는 듯했다. 어린 시절 광주리에 사과를 이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면 어떻게든 한알은 얻어먹었던 기억, 너무 맛있어서 씨까지 꼭꼭 씹어 먹던 그때의 잔상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과일이니만큼 상품 감정에 더 객관적인 이 씨. 자신의 농작물이라고 예외는 없다.
“아무리 제가 키운 사과라지만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아예 팔지 않습니다. 그게 사과 농사꾼으로서의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지요. 또 하나의 자부심은 ‘자연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혹 좋은 빛깔을 내려고, 씨알을 굵게 하려고 인위적인 힘을 가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자연은 그 힘을 알아챕니다.”
상품에 따라 가격 낙차가 큰 만큼, 많은 투자가 필요한 사과. 그렇다고 욕심이 과하면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덧붙여, 그는 같은 지역에서 자란 사과인데도 집집이 맛이 다른 이유로 ‘주인의 손길’을 꼽았다. 결국 질 좋은 사과의 당락은 주인의 정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용우 씨 부부의 손길은 어떨까? 그의 아내 김 씨는 열매에 봉지도 씌우지 않고 꼭지도 따지 않는 스마일사과를 ‘자연 그대로의 사과’라고 설명했다. 자연이 익히니 더욱 달콤한 사과가 탄생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직접 기른 사과 열매를 따 먹을 생각을 하면 일도 고되지 않다는 이 부부. 과연 진정한 사과홀릭다운 자세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군위
“처음 이 과수원 옆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내는 기가 찼는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고요. 좋은 땅을 보면 탐이 나는 게 농부인데 어떡합니까. 열심히 설득했지요.”
대한민국에 군위가 있는 줄도 몰랐던 두 부부의 정착 사연은 굴곡이 깊었다. 너무 외진 곳이라 시장 한 번 나가기도 어려웠다. 변변한 집 없이 이웃 분께 신세를 지던 때였다. 오죽하면 김 씨의 친정어머니는 첫 방문 뒤 눈물을 훔치셨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을 흔든 것은 남편의 자신감이었다. 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남편의 말을 이었다.
“가장이 자신감 있게 리드해야 가족이 믿고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희 남편은 합격점입니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나는 사과가 맛이 좋았어요. 사과를 먹어 보고 이 정도 맛이라면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죠.”
차츰 사과가 열리고 판로가 개척되면서 김 씨는 이내 안정을 찾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행복도 되찾았다. 하루가 다르게 싱글벙글 웃으며 땀 흘리는 남편의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말에 멋쩍게 웃던 이 씨는 귀농 지역으로 군위를 선택한 진짜 이유를 털어놨다.
“경쟁하는 맛이 있어야 일할 맛이 나는 거 아니겠어요? 귀농 작목으로 사과를 결정했으면 사과의 본산지로 들어가야죠. 그래서 경상북도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다음엔 적지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군위에 자리 잡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땅의 질에 비해 가격이 싸다는 점이었어요.”
군위만큼 사과에 알맞은 땅도 없다는 게 이 씨의 자랑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모암은 화강암이다. 그런데 군위는 석회암을 기반으로 한다. 산성보다는 알칼리성이 강해 당도에 좋은 영향을 준다. 게다가 과수가 걸리는 병원체의 직접적인 원인인 비도 적다. 공기가 잘 통하고 빛도 잘 들어 광합성의 기본에 부합하는 천혜의 명당이다.
“제가 군위에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이 계세요. 군위군 농정과의 김동주 계장님, 사공명상 계장님, 이창원 주사님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저의 귀농인생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손수 지은 흙집에서 피어오른 황금 금실
이 씨는 귀농 첫해에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동네 어르신께서 살고 계시던 흙집 한 칸을 내주셨다. 귀농 결정 시 흙집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이 씨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집을 토대로 흙집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앞으로 살아갈 집을 어떻게 지을지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께서 제공해주신 흙집 덕분에 귀농한 지 3년째 되던 해부터 제가 살 집을 직접 짓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확장공사까지 하는 데 총 4년이 걸렸습니다. 아파트에서 살 때는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흙집에 살면서 싹 날아갔어요. 방이 아무리 뜨거워도 코가 따갑질 않고요. 천장과 지붕 사이에 숯, 소금, 흙을 넣어놨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합니다.”
직접 지은 흙집 예찬에 푹 빠진 이 씨는 흙집의 또 다른 장점을 설명했다.
“이 집에 살면서 부부 금실이 좋아졌어요. 물론 꼭 집 때문만은 아니겠죠. 하지만 손수 지은 집에서 생활하니 감회가 남다른 것은 사실이에요. 함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 김 씨 역시 남편의 말에 공감했다.
“도시에 사는 맞벌이 부부는 각자 회사에서 다른 환경에 처하잖아요. 오늘 하루 서로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죠. 그래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하지, 인내하고 감동을 주려는 노력은 덜한 것 같아요. 내 몸이 피곤하니까요. 하지만 귀농을 하면 온종일 붙어 함께 있으면서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 변화를 알 수 있으니까 서로 이해하게 돼요. 얼마나 고생하며 일하는지 직접 보니까 측은한 마음도 생기고요.
주민화합의 절대 조건은 ‘긍정’
두 부부는 주민과의 화합에 필요한 절대 조건은 ‘긍정적인 마음’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긍정적인 마음이 농사보다 중요해요. 농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곳이에요. 논두렁에 경운기가 빠지면 어떡하겠어요. 도시처럼 보험회사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때 동네 분들이 알아서 다 도와주세요.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베풀어야 하고요.”
이 씨는 도시에서 온 사람을 눈여겨보는 마을의 시선은 당연한 이치니 민감해 하지 말고 먼저 웃으며 다가서라고 조언한다.
“지역민들은 친해지면 속에 있는 것까지 다 내놓으려고 하세요. 농사법도 오픈되어 있어요. 고수 멘토도 많고요.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자세를 바꿔야 해요. 긍정적인 마음가짐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웃으면서 참여할 수 있지 않겠어요?”
부부가 느낀 농촌과 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한다. 경제력, 학력, 외모 등 도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이곳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그저 마음 하나면 모두가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열심히 살면 누구나 도와주려고 두 팔 걷어붙이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더욱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이용우 씨 부부. 그들의 맛있는 웃음은 ‘스마일사과’의 단단한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자료제공·농림수산식품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