手話로 굽는 빵, 전주 새로운 명물됐다

"여기가 그 '따뜻한 빵집' 맞죠?"

지난 9일 오후 5시 전북 전주 완산구 효자동의 한 빵집. 10평(33㎡) 남짓한 가게 안은 8명의 손님으로 꽉 차 있었다.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미 전주 내에선 '최고의 빵집'이라는 소문이 퍼져 하루 평균 200여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는다. 전북 김제에서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찾아온 손님도 있다.

빵집 주인인 박명수(32) 셰프는 지난 5월 열린 '세계조리사대회'에서 제빵 부문 금상을 탄 '빵의 달인'이다. 그는 국내 최대 베이커리 축제인 '서울국제빵·과자페스티벌'에서 3년 연속 금·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의 빵 맛을 최고로 만들어주는 것은 그를 보좌하는 송현준(29), 정우석(22) 셰프다.

이들은 청각장애 2급이다. 대화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하는 것도 부정확해 박씨는 이들과 '수화'로 일한다. 하지만 빵이 나오는 속도는 다른 빵집들보다 빠르다.

박씨는 "이들은 귀가 잘 안 들리는 대신 눈과 손을 사용하는 집중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다. 일반인이 빵 2개 반죽할 때 3개씩 만든다. 손재주가 좋아 케이크에 크림으로 장식하거나 무늬를 넣는 일도 잘한다"고 말했다.

이 가게는 수화로 대화하며 빵 만드는 모습을 본 손님들에 의해 '청각장애인을 고용한 따뜻한 주인이 있는 빵집'으로 소문나기도 했다.

박씨와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박씨가 과장으로 일하던 대전의 한 빵집에 이들이 인턴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얼마 안 돼 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빵집은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일을 배워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빵이 오븐에서 가장 맛있게 구워지는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아내더라고요. 물건이다 싶었죠."

박씨가 꿈이었던 '내 고향에 빵집 만들기'를 준비하며 같이 일할 셰프를 찾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이 둘이었다.

정씨는 "박 셰프는 내게 제과기능장의 꿈을 심어준 분이라 망설임 없이 따라나섰다"고 했다. 송씨도 "박 셰프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셰프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라며 "직접 수화를 배우며 내게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대전에 사는 이들을 위해 전주에 머물 월세 집도 얻어줬다.

이렇게 세 명이 처음 빵집을 열었지만,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일반인에게 맞춰진 오븐의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빵을 여러 차례 태운 것이다. 박씨는 이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오븐 소리를 최고로 키웠다.

"우리는 반죽부터 발효까지 매일 새로 빵을 만듭니다. 이 때문에 아침 7시에 출근해도 10시나 되어야 빵이 나왔어요. 출근길에 오신 손님들이 '왜 빵이 하나도 없느냐'고 타박하기 일쑤였죠. 그때 이 친구들이 '우리가 새벽에 나와서 빵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매우 고마웠습니다."

송씨는 자신과 같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제빵 기술을 전수하는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갖고 있다. 정씨는 장애인 출신 제1호 '제과기능장'이 되는 것이 목표다.

박씨는 "나를 믿고 따라주는 친구 두 명만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데 전 이미 두 명을 다 얻었습니다. 내 가게를 꾸리는 꿈을 이 친구들 덕에 이뤘으니 이젠 이 친구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