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식료품·의약품株는 강세

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저성장(低成長)'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각국 증시마다 사상 최고가를 연거푸 갈아치우는 무서운 종목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주가가 급상승하는 기업들은 성장 침체 시대의 새로운 성장주(株)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고 진단한다. IMF(국제통화기금)는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한국·중국·일본·영국·프랑스·이탈리아·인도)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0.4%포인트가량 낮춘 상황이다.

◇주요국 증시마다 필수품 '필수 투자붐'

한국·미국·유럽·중국 증시의 대표지수에 속한 업종별 주가 상승률과 사상 최고가 종목들을 분석해 보면, 소비재 업종과 헬스케어(의료·의약품) 업종의 강세가 뚜렷하다.

올 들어 이달 11일까지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 의약품 업종은 15.5% 올랐다. 대원제약의 올해 주가 상승률은 100%를 넘는다. 필수소비재에 속하는 음식료품 업종(16.1%)과 또 다른 경기방어주인 전기가스 업종(17.4%)도 큰 폭으로 올랐다. 미국 증시에서도 경기방어주인 통신·소비재·헬스케어 업종이 상승률 5위 안에 들었다.

경기방어 업종 외에는 IT주가 선전, 올해 한국과 미국의 IT 업종은 각각 17%가량 상승했다. 중국 증시에서도 업종 상승률 1~3위를 각각 IT·헬스케어·소비재 업종이 차지했다.

◇정말 싸거나 후발주자를 궤멸시키거나

업종이 전체적으로 올랐다고 업종 내 종목 대부분이 급등하는 것은 아니었다.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거나 후발 주자를 사실상 완전히 따돌리며 시장 지배력을 인정받은 경우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미국에선 저가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할인 전문업체인 월마트, 홀푸드, 코스트코 등이 줄줄이 사상 최고가를 달렸다. 코카콜라(음료수)와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담배) 등 시장을 과점하는 기업들도 연초 대비 8~14% 올랐다.

이런 상황은 유로존 위기로 경제 침체를 겪는 유럽과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선 의류업체인 아디다스가, 스페인에선 자라(ZARA) 브랜드로 저가 패션 시대를 연 인디텍스 등이 상장 이래 최고가를 연출했다. 한국에서도 LG생활건강, 오리온, CJ, KT&G 등 의식주 업종이 연달아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저가 화장품 시대를 열었고 담배와 인삼을 주로 파는 KT&G도 시장 지배력이 높은 기업이다.

경기방어주가 선전하는 가운데 애플·구글·IBM·삼성전자 등 경기민감주로 꼽히는 IT종목이 사상 최고가 행진을 기록한 것이 눈에 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IT업종지수 자체는 올랐지만, 업종 내 양극화 현상은 극심했다"면서 "결국 주가가 오른 IT 기업들도 혁신을 통해 후발 주자를 따돌린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애플과 삼성전자는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경쟁업체들을 하나둘씩 '궤멸'시키며 주가가 상승한 경우다. 주가가 749달러까지 오른 구글은 검색 시장을 장악한 데다 저가 기업용 소프트웨어로 경쟁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8일에는 소프트웨어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처음으로 따돌렸다.

◇돈 풀어도 주도주 바뀌지 않아

흥미로운 점은 지난 7월부터 유럽, 미국, 일본 순으로 양적 완화(국채 매입을 통해 자금을 푸는 방법)에 나서며 돈을 풀고 있지만, 주식 투자자들은 필수소비재만 담고 있다. 지난달 14일 미국의 3차 양적 완화 발표 이후 미국 증시에서는 전기가스업(12.3%), 필수소비재(4.6%)만 크게 올랐다. 한국에서도 전기가스(10.4%), 음식료(8.9%), 의약품(8.6%) 업종이 주로 올랐다. 지난 2010년 11월 2차 양적 완화 이후 반도체, 조선, 화학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10~30%가량 올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