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물고기 공수하는 조종사·상인 캐리커처·돌고래… 횟집&미술의 색다른 만남… "시장 살려야죠"

"전통시장 안 비좁은 횟집 골목이 갤러리이죠. 골목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작품을 하나 하나 찾아보면서 감상하면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대전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동구 원동 중앙시장에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시장미술제'가 열리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전통시장미술가협회 주최로 오는 25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가 아닌 폭 2m, 길이 50여m의 비좁은 전통시장 안 횟집 골목 여기저기에 작품이 전시되는 이색 전시회이다. 식당 유리창은 물론 벽, 간판 주변 자투리 공간 등이 캔버스다. 작품소재는 횟집과 잘 어울리면서 친근한 물고기 등이어서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아낸다. 전통시장미술가협회 작가들이 '시장 보고 미술 보고-어물展'을 주제로 4회째 여는 전시이다. 올해는 '익사이팅 대전 2012 원도심활성화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돼 대전시로부터 450만원을 지원받았다.

대전 중앙시장은 6·25전쟁 이후 대전역 인근에 형성돼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대전 최대의 전통시장. 대전과 충남·북은 물론 전북에서도 찾아와 늘 인파로 북적였던 곳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여느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주변 대형 마트와 백화점에 밀려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횟집골목 역시 본래는 10여개 작은 횟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4곳만 남았다.

이에 대전의 미술작가 17명은 "침체된 전통시장에 미술을 접목시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이들은 무보수로 벽화, 설치미술, 인물 캐리커처 등 작품 40여점을 전시한다. 이를 위해 한 달 전부터 횟집골목에서 틈틈이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에 참여한 김대용(38) 작가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이 미술제를 계기로 활력 넘치는 삶의 현장이자 문화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좁은 골목길에 작품이 하나 둘 들어서자, 장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구경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앙증맞은 벽화와 대형 물고기 형태 설치작품 등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색다른 볼거리가 등장하면서 행인들이 너도나도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또 중앙시장 상점 주인 28명의 개성을 살린 인물 캐리커처도 그려 상점 앞에 붙이도록 해 손님들의 미소를 자아낸다.

'서울횟집' 안에는 금빛 실로 만든 고래 형태 설치작품이 들어섰다. 횟집 간판 아래에 철사로 만든 길이 2m, 높이 80㎝의 물고기 형태 설치작품에는 작은 풍경을 달아 바람이 불면 청아한 소리를 낸다. 진입로 격인 골목 안 윗쪽엔 스테인레스 판으로 만든 30여개의 물고기 형상을 매달아 한눈에 횟집골목임을 알 수 있게 꾸몄다. 또 허름한 벽 모퉁이엔 골목을 익살스런 표정으로 엿보는 아이들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졌다.

횟집 벽에 고추를 머리에 이고 있는 아낙네 주변을 돌고래, 거북,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을 그린 알루미늄 쟁반도 작품으로 내걸렸다. '충남횟집' 유리창에는 상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이 그려졌다. 골목 안 누룽지를 만들어 팔던 가게 앞 유리창에는 운치 있는 노송 그림이, 횟집 수족관 옆 벽에는 비행기를 탄 조종사가 싱싱한 물고기를 공수하는 유머가 담긴 벽화가 생겼다.

전시된 작품들은 행사가 끝나도 시장 골목의 볼거리로 남게 된다.

50여년간 민물고기를 팔고 있는 '옥천민물' 유근우 (58)사장은 "유리창에 그린 물고기 작품이 운치를 더해 손님들이 즐거워한다"며 "어두웠던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뀌었다"고 반겼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통시장미술가협회 이재우(56·서양화가) 회장은 "전성기 때 중앙시장 상인들은 돈 상자를 깔고 앉아 장사할 정도로 번성했다고 들었다"며 "침체에 빠진 모습이 안타까워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원동에서 나고 자랐기에 중앙시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07년 전통시장미술가협회를 주도적으로 결성, 시장미술제를 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회장은 "시장미술제가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데 보탬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