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두 번 실패, 마지막 세 번째 도전… 조광래 나로호발사추진단장

전남 고흥군의 누런 들판은 적막했다. 다리(橋)로 연결된 바다도 말이 없었다. 나로우주센터로 가는 길…. 3년 전 첫 번째 발사 때도 나는 이 길을 지나갔다.

조광래(53) 나로호발사추진단장도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이미 두 번 실패한 현장 지휘관에게 다시 마지막 기회 한 번이 주어졌다. 그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 길은 너무 잔인해보였다. 숱이 적은 백발(白髮) 때문에 그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있었다.

"3차 발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얻을 것은 다 얻었다며. 만에 하나 결과가 너무 겁나니까, 스스로 그런 명분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겁하고 옳지도 않다."

―한 번 피해 가는 것이 더 오래갈 수도 있지 않은가?

"실패하면 또 도전하고 도전해야지, '나로호'를 피해 가면 우리 연구원들을 모두 패잔병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나는 정책결정자나 국회를 찾아다니며 '어떤 경우에도 다시 발사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2년 4개월 만에 발사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발사할 때(2009년) 제작해놓은 부품들로 나로호가 조립됐다. 말하자면 3년 이상 지난 부품들이다. 문제가 없겠나?

"세 번째 발사가 너무 늦춰졌다. 하지만 부품 수명은 약 5~10년이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번 점검에서 부품 전체 평균 신뢰도는 93%였다."

―93% 신뢰도라면 성공 확률은?

"신뢰도를 놓고 성공 확률을 맞히긴 어렵다. 이는 기술적인 완벽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해도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할 수도 있는가?

"이를 공학에서는 '랜덤 페일려(random failure)'라고 한다. 비유하면 어제까지 잘 나오던 TV가 오늘 갑자기 안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경우의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하늘이 굳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이번 나로호는 성공한다?

"나는 그렇게 본다."

―만약의 결과가 두렵지 않은가?

"잘못되면 어떡할까, 그런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이미 조립된 발사체를 쳐다보며, 그 내부를 샅샅이 다 아니까, 간절히 발사 성공을 그리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기회에서 만회를 해야 한다. 이게 배수진이다. 연구원으로 살아온 삶을 걸고 승부를 하는 것이다."

―이번 발사는 개인의 성패를 떠나 우리나라 우주 개발의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왜 모르겠나. 우주 개발에 대한 관심이 식고 예산도 깎일 것이다. 그래도 이 난관 앞에서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는 7월 말부터 나로도에 내려와 있다. 연구원 100여명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이다. 우주센터 바깥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오는 26일(기상 여건에 따라 연기될 수 있음) 발사 때까지 근신하고 있다고 했다.

―1차 발사 때 로켓이 궤도를 이탈하던 바로 그 순간의 감정 상태를 기억하나?

"… 캄캄했다."

―현장 지휘관은 그날을 어떻게 보냈나?

"미션 실패의 충격 속에서, 그날 저녁 초기 데이터를 놓고 사고조사위원회가 열렸다. 그때까지는 페어링(인공위성 덮개) 문제를 알 수 없었다. 로켓에 탑재된 인공위성만의 무게는 100㎏이다. 페어링 한쪽이 분리되지 않아 330㎏이 덧붙었다. 이 때문에 궤도에 진입하는 초속 8㎞의 추력(推力)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실패는 우리 측 잘못으로 판정이 났다.

"우리 책임이었다. 페어링이 분리되려면 정격 전압을 넣어 화약을 터뜨려야 한다. 당시 충분히 전기가 들어가지 못했다. 예측하지 못한 방전(放電)이 있을 줄 몰랐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과연 실패의 교훈이 있었나? 그 뒤 2차 발사는 136.7초 만에 폭발했다.

"공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1차 실패 후 원인을 분석·검증하느라 지상 실험을 410회 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성공을 맛보겠다는 오기가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1단 로켓이 발사되는 구간에서 폭발했다."

―그 폭발은 우리와 러시아 양쪽 다 책임 있는 걸로 결론 났다.

"기술적으로는 우리 쪽에 문제가 없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를 입증할 데이터가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발사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양쪽 책임으로 매듭지었다. 심적 고통은 2차 실패 때가 훨씬 더 컸다. 1차 때도 비판과 질타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처음이니까 고생했다'며 위안과 격려가 섞여있었다. 하지만 2차 실패 후에는 여론이 싸늘했다."

―3차 발사를 위해 러시아에 더 주는 돈은?

"국회에서도 계속 이런 질의를 했다. 추가 지불하는 돈은 없다."

―1단 로켓을 또 만들어야 하는 러시아가 대가 없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나?

"당초 두 차례 발사 실험을 포함한 협력 비용으로 2억1000만달러에 계약했다. 한 번이라도 발사가 실패할 경우 협력 비용에서 5%(1050만달러)를 감한다. 재발사에 응하면 2%(420만 달러)만을 깎는 걸로 되어있다. 러시아가 재발사에 응한 것은 돈보다 명예 문제였다. 여기에 러시아 연구원 100여명이 자비로 출장 와있다. 러시아 정부로서도 자국이 참여한 나로호 발사를 '실패'로 끝낼 수는 없었다."

―나로호의 1단 로켓은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앙가라' 로켓과 같은 종류다. 우리나라가 돈을 대고 앙가라 로켓의 성능 시험을 해주는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말 실정을 모르는 주장이다. 러시아에서 이미 개발돼 상용되고 있는 로켓을 갖고 온다고? 상용되는 로켓 엔진은 다른 나라에 팔지 못한다. '미사일통제체제(MCTR)' 규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가 소형 로켓을 만들 때 미국에서 송신기 등 부품 몇 개를 사왔다. 그 뒤 미국으로부터 여섯 번이나 사찰받았다."

―껍데기만 우리 기술일 뿐, 핵심은 모두 러시아 기술인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은 '쇼'라는 비판이 있었다.

"나로호의 전체 부품이 15만개다. 러시아가 관여하는 1단 로켓에 12만개, 우리 쪽에 3만개다. 부품 개수로 따지는 것은 맞지 않지만, 기술 점유율도 그 정도 비율이 될 것이다. 로켓의 구성 요소는 엔진, 유도 제어, 구조 경량화, 전자, 지상 발사대 시스템 등이다. 이 중 우리에게 없는 것은 로켓의 엔진 기술이다."

―당초 '나로호'에 돈과 시간을 들이지 말고, 곧바로 '한국형 로켓' 기술 개발에 들어갔어야 하지 않았나?

"국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했어야 한다는데, 그때도 참고할 기술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고 시행착오를 거쳤으면 지금보다 기술력이 더 나아졌을까. 그건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기술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러시아 로켓 엔진의 설계도에 접근할 수도 없었고, 기술 이전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설계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되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됐다. 나로호를 하면서 설계·시스템·제작·시험평가에 관한 자료가 2만 3천쪽이 넘는다. 이를 통해 '한국형 로켓'(2021년 완성)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나로호와 '한국형 로켓'은 기술이 다르다고 들었다.

"이는 로켓 구경을 못 해본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로켓을 안다고 언론 인터뷰 하는 사람들치고 로켓 엔진 한 번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백지상태에서 러시아와 함께 작업하면서 어깨너머로, 혹은 대화로 터득해왔다. 나로호를 하는 과정에서 30t짜리 엔진을 이미 개발했다. '한국형 로켓'의 75t엔진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몇 달 전 우리나라 '아리랑 3호' 위성이 일본 로켓에 실려 우주로 발사될 때, 한 일본 언론은 "한국은 인공위성 기술은 높지만 로켓 기술은 일본의 1960년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 않다. 인공위성의 핵심 부품은 외국에서 사올 수가 있지만, 로켓 부품은 팔지 않는다. 모든 걸 국내에서 개발해야 한다. 기술은 수평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도약한다."

―나로호의 두 번 실패로 항공우주연구원장이 물러났다. 하지만 조 단장은 남았다. 두 번 실패한 현장 지휘관에게 다시 맡겨야 하느냐를 놓고 말이 있었다.

"유구무언이다. 온 국민이 기대를 건 만큼 상실감도 컸을 것이다. 이는 내가 사회적으로 책임질 대목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대목은 '설계가 제대로 됐느냐''과연 날아갈 수 있는 물건을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 우주 개발의 아버지라는 이토가와 히데오(絲川英夫) 박사는 책에서 '네 번 연달아 발사에 실패한 뒤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다'고 썼다(1970년 다섯 번째 발사에서 성공)."

―무엇보다 본인이 중압감으로 감당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호주머니에서 꺼내 보이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이까짓 걸 못 버텨'했지만, 결국 신경정신과에 갔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리 연구원에서 '아리랑 3호 위성' 책임자와 '천리안 위성' 책임자도 나와 같은 병원을 다녔다."

―지금 나와 대화도 나누고 있고, 정상적으로 업무 수행을 하고 있지 않는가?

"늘 그런 게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가빠진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 증상이 오래되면 조짐을 느낀다. 그때마다 비상약을 복용한다."

―로켓 분야는 한순간에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린다. 조 단장의 증상은 결국 스트레스에 따른 것이 아닌가.

"스트레스가 호르몬 분비의 균형을 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일찍이 1995년부터 로켓 연구의 대표 주자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이 분야에 전문 인력이 없었다. 사명감만 있고 아는 것은 부족했다. 지금껏 나는 딱 두 번 휴가를 갔다. 두 번째는 아들이 고2가 됐을 때다. 아내가 '당신 일도 좋지만 너무 그렇게 하면 자식과 추억이 없다'고 해서 휴가를 갔다. 여기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은 12년째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나와 조 단장과는 같은 세대인데, 유별난 것 같다.

"어떤 분야가 궤도에 올라서려면 한 세대의 희생 없이는 안 된다. 조선·자동차·반도체에서 선배 세대가 그런 과정을 거쳤다. 가정보다 일이 먼저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로켓 분야를 맡았다. 후배들에게는 잘 물려줘야 한다. 우리 세대가 희생할 수밖에 없다."

섬에서는 날이 일찍 어두웠다. 내 마음은 바다로 가라앉았다. 신이여, 이들에게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