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외국인 노동자 춤·환호… 그날 마석 가구공장 옥상에선

맷돌(磨石) 만들던 마을은 가구 만드는 동네로 바뀐 지 오래였다. '마석'의 흔적은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의 40개 리(里) 중에도 남아 있으나 이제 '마석 가구 공단'이란 이름으로 더 뚜렷하다. 90여 가구 매장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토요일 저녁. 이곳은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불 꺼진 가구 공장들은 방치된 창고처럼 보였다. 18만평 부지에 공장 4000개가 들어선 '국내 최대 가구 공단'의 주말 저녁은 한마디로 초라했다.

지난 6일 저녁 7시 이 동네 한구석 공장 옥상에만 불빛이 환했다. 이곳에서 처음 열리는 '마석 동네 페스티벌' 현장이었다. 영어로는 MDF(Maseok Dongne Festival). 낮에 목재 먼지 속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택한 축제 이름이다.

평소 주차장으로 쓰던 공장 옥상 한쪽에 무대가 마련돼 있었다. 앰프와 스피커들이 세워진 무대는 화분과 조화, 부직포를 잎사귀 모양으로 오린 장식들로 치장됐다. 조명은 드럼통에 긴 막대 형광등을 꽂아 만들었다. 가구 작업대들이 객석 노릇을 했고 폐가구 자재를 태우는 드럼통 근처에서 사람들이 가을밤 한기를 쫓고 있었다. 무대 반대쪽 끝에선 방글라데시 남자들이 큰 솥에 죽을 끓였다.

이날 페스티벌은 마석 가구 공단에서 사는 이주 노동자들과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 그리고 홍대 인디 뮤지션들이 힘을 합쳐 처음 연 축제였다. 오래전부터 자신들끼리 조촐한 잔치를 해오던 600여 이주 노동자와 이곳에 기반을 두고 창작을 하는 미술 창작팀 '믹스라이스', 그리고 홍대 앞의 공연 기획팀 '더 아웅다웅스'가 뜻을 같이했다. 싱어송라이터 강산에를 비롯해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서교그룹사운드, 악어들 같은 인디밴드 8개 팀이 이날 무대에 섰다.

"다 밥을 먹고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무대 반대편 노천 부엌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끼추리'와 '무르기르망쇼'라는 방글라데시 음식이었다. 카레를 섞은 죽 위에 닭고기와 삶은 계란을 얹었는데 모두 맛있게 먹는 표정이었다(숟가락이 있어서 맨손으로 먹을 필요는 없었다).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가 인도 노래와 네팔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것으로 축제는 시작됐다. 옷장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었을 이 남자는 제법 춤을 춰가며 흥겹게 무대를 열었다. 이어 필리핀에서 온 젊은 여자가 영국 밴드 퀸의 'I Want To Break Free'를 불러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300평쯤 되는 공장 옥상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네팔 등지에서 온 남녀노소와 가구 공단 한국인 사장과 직원들, 그리고 외지에서 온 관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방글라데시 여자들도 보였다. 시작 때 50여명밖에 되지 않던 사람은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인디밴드 '악어들' 순서에서 흥이 한껏 달아올랐다.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었다. 출연진이 교체되는 시간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강남 스타일'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싸이가 온 것처럼 열광적인 춤판이 벌어졌다. 가짜 터번을 쓰고 공연을 하는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연주를 시작하자 진짜 터번을 쓴 인도인이 무대 앞에 나와 터번이 벗겨질 때까지 춤을 췄다. 불 꺼진 공장들과 산의 윤곽이 어둠 속에 뒤섞인 가을밤, 이 공장 옥상은 비현실적으로 흥겨웠다.

이윽고 강산에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가 '넌 할 수 있어'를 구성지게 부를 때 모든 뮤지션과 한국인이 목청껏 따라 불렀다. 외국인 중엔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밤 11시에 끝낼 예정이었던 축제는 자정 넘어서야 잦아들었다. 공연 기획자 '더 아웅다웅스'의 오도함씨는 "처음에는 동네잔치를 한번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도 또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