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향해 뛰는 기업] 개당 3~1200원 볼트로 매출 1000억원 돌파

11일 오전 경기도 평택 포승산업단지에 있는 볼트 생산 전문업체 영신금속공업. 공장 안에 빽빽이 들어찬 100여대의 기계가 실처럼 가늘거나 엄지손가락처럼 굵은 철사들을 척척 삼키더니 순식간에 다양한 볼트를 연이어 뱉어냈다. 볼트란 두 물체를 조이거나 붙이는 데 사용하는 부품으로 몸통에는 홈이 있고 머리는 주로 육각이나 사각 모양이다.

기계들은 정확한 길이로 철사를 자르고 나서 엄청난 압력으로 뭉뚝한 머리 부분을 뚝딱 만들었다. 다음 공정에서는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몸통 홈을 만들었다. 작은 것은 길이가 5㎜에 불과했고, 큰 것은 300㎜짜리도 있었다. 가격도 개당 3원에서 1200원까지 다양했다. 이정우 대표는 "현재 생산하는 볼트와 나사 종류는 모두 1만여종이고, 한 달에 약 2억8000만개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1967년 서울 문래동에 '영신 십자 스크루 제작소'란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 영신금속공업은 요즘 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생산품의 70~80%는 자동차에 들어가며 부가가치도 높다. 이르면 내년쯤 충남 천안에 제2공장을 세우겠다는 포부다.

◇혁신으로 만든 드라마

하지만 지옥과 같은 악몽도 있었다. 물량의 절반 가까이를 납품했던 기아자동차가 15년 전 부도가 났다. 다음 해엔 IMF 경제 위기가 찾아왔고, 2000년엔 대우자동차가 부도를 맞았다. 곧이어 매출이 컸던 GM도 부도가 나면서 회사 경영은 벼랑에 몰렸다.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회사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 아버지에 이어 1999년부터 경영을 맡아온 이 대표가 과감한 혁신의 깃발을 올렸다. 2003년 서울 구로구 1공장과 인천 남동구 제2공장을 통폐합해 지금의 포승공장으로 이전했다. 공장 매각 대금 140억원에 은행 차입금을 더해 190억원을 투자했다. 최신 설비도 들여왔다. 주변에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오전 7시 30분 전 임직원이 동참하는 품질 회의를 열었고, 공장과 기계를 닦고 청소했다. 회의 때는 '구호'를 외쳤다. "혁신은 희생과 눈물과 땀의 결실이다. 우리는 매주 한 건씩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얼마 안 가 놀라운 성과가 나타났다. 100만개 중 100여개이던 불량품이 10개 수준으로 줄었다. 직원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실적도 흑자로 돌아섰다. 신제품 개발도 이어졌다. 기능은 세계적 수준이면서도 원가는 외국 제품의 10분의 1에 불과한 자동차 접지용 볼트도 개발했다. 무려 14개월에 걸쳐 개발한 캠볼트(자동차 바퀴와 차체를 연결하는 볼트)는 연 매출 20억~30억원을 기록하는 효자 품목이 됐다. 제조 공법 개선으로 원가를 35% 낮추고, 기능을 향상시킨 덕분이다.

이 대표는 "창업과 함께 국내 최초로 십자 나사못을 개발한 곳이 우리 회사"라며 "앞서가는 제품, 우수한 품질은 회사의 생명과 같다"고 말했다.

제품 경쟁력이 높아지자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다퉈 구입 물량을 늘렸다. 현대·기아차, 한국GM 등 국내뿐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도 주문이 밀려들었다. 매출은 덩달아 올랐다. 2009년 547억원에서 2010년엔 812억원이 됐고, 지난해엔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1035억원)했다. 올해 매출 예상액은 1300억원.

혁신 활동은 밖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2006년 말 대한민국 경영혁신 대상(중소기업 컨설팅 혁신대전 대상)을 받았다.

◇"직원 자녀가 함께 다니는 일터가 꿈"

영신금속공업엔 장기근속 직원이 유난히 많다. 관리본부장인 홍석희 부사장은 만 74세다. 30년 이상 회사에 다닌 직원은 12명이고 20년 이상은 부지기수다. 이 대표는 "우리 회사는 재빠르고 똑똑하고 머리 좋은 회사는 아니다"며 "인내와 성실을 중요시하고, 장수하는 직원이 많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돈이 아니라 생명력을 좇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종업원이 장수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게 그의 신조다.

직원 자녀는 취업 때 우대한다. 이 대표가 그랬듯이 직원 자녀도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를 중요시해 이 대표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노사분규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신금속공업은 앞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직원들 자부심도 커지고 품질 향상을 위한 기반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향후 몇년 안에 해외 매출 1000억원을 올리는 게 목표"라며 "그때가 되면 전체 매출은 지금의 두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