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하며 10년째 봉사강원도 원주 김영문씨 한달 120만원 월급에서 3분의 1 떼내 자장면 만들어 독거노인·장애아 등에 제공 "사업 망해 한때 자살기도… 돈 없다고 모든게 끝난건 아냐 건강한 몸으로 할 수 있는 것 세상에는 정말 많더라고요"
"1년 만에 드신다는 자장면 만드는 재미, 얼마나 좋은지 아시나요?"
지난 13일 낮 12시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의 한 복지관 지하식당에 위치한 10개의 테이블에 독거노인들을 위한 자장면 200그릇이 놓였다. 이날 자장면 '요리사'는 김영문(51)씨. 그는 한 장애인단체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전하며 한 달에 120만원을 버는 '봉고 운전기사'다. 아내가 장애인 활동 보조일을 해서 80만원을 보태, 부부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 산 밑 20평짜리 '흙집'에 살면서 이 돈으로 그는 1990년 사업 실패로 진 빚 2000만원을 나눠 갚고, 주말이면 원주 시내에 위치한 35개의 복지관을 돌면서 자장면을 만들어 대접한다. 그가 10년간 만든 자장면은 한 달에 평균 세 번, 200여 그릇씩 7만2000여 그릇이다.
그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1990년 사업 실패 직후다. 농사꾼 집안의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전기 기술을 배웠다. 1988년엔 회사까지 차렸지만 사기를 당해 그 당시 80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그의 아들은 두 살이었다. 김씨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해, 자살을 시도했다. 병원 갈 돈도 없어 가족들이 비눗물 등으로 위세척을 했다. "하루 만에 깨어났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지요. 이 목숨은 '덤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덤으로 얻은 목숨인 만큼, 죽으려 했던 힘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이후 미용학원에서 운전기사로 새롭게 일하게 된 그는, 학생들이 미용봉사를 가야 하는데 차가 없단 얘기를 듣고 첫 봉사에 나섰다. 처음엔 차만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전기 기술을 활용해 집을 고치고, 바리깡으로 어르신들의 머리를 밀었다. 그는 "봉사를 가보니 알겠더라고요. 돈이 없다고 세상이 끝난 게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을…"이라고 했다.
자장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봉사 10년 차이던 2002년이다. 우연히 시켜 준 자장면을 장애아동이 아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다.
13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한 복지관 식당에서, 김영문(왼쪽)씨가 만든 자장면을 먹은 할머니가 김씨의 손을 잡고“참 고맙소”라고 말하고 있다. 복지관 관계자는“이날 김씨가 만든 자장면을 드시기 위해 1시간 전부터 어르신들이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며“옆 마을에서 온 독거노인들도 많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스무 살 때 200원 주고 먹은 내 생애 첫 자장면이 기억났어요. 뭐니 뭐니 해도 자장면은 서민들의 '별미(別味)' 아닙니까. 이 가난한 서민들에게 자장면 한 그릇이 주는 기쁨을 나눠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문제는 비용이었다. 보통 복지관에는 200여명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 4000원짜리 자장면만 대접해도 80만원이 든다. 김씨는 비용절감을 위해 직접 자장면 만들기에 나섰다. 학원비가 없어,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은 중국음식점 사장에게 다섯 달간 틈틈이 배워 익혔다. 재료는 직접 재래시장을 돌며 구한다. 일손이 부족할 땐 동생이나 아내의 도움을 받는다. 면 뽑는 기계는 157만원에 구입해 10년째 쓰고 있다. 그 결과 김씨는 야채와 고기를 보통 중국 음식점보다 훨씬 많이 넣고도 자장면 200그릇을 15만원에 만들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요리한다고 나서고, 주방기구까지 사들이자 처음엔 아내가 '작은 마누라 생겼느냐'고 오해할 정도였어요. '남자는 손에 물 묻히면 안 된다'고 믿는 저희 어머니께는 아직도 비밀입니다"고 했다.
김씨는 사람들이 '당신도 돈이 없는데 무슨 봉사냐'고 물을 때마다 '자장면을 만들며 돈보다 더 값진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가 반찬을 만들어다 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다 쉬어버린 반찬을 드시다 탈이 나는 어르신이나 맨밥만 드시는 어르신들이 상상되세요? 장애인들은 대부분 휠체어가 들어가는 식당이 없어서 외식을 해본 경험이 전무합니다. 제가 만든 자장면이 생애 처음이란 아이들이 많았지요. 단체 생활을 하는 고아원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자장면 한 그릇에 이렇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사실 충격이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김씨는 처음엔 한 군데서만 하려고 했던 봉사를 35군데로 늘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장면 한 그릇의 기쁨'을 나눠주기 위해서다. 김씨의 목표는 어려운 사람들이 언제든 자장면을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아예 '나눔 자장면집'을 만드는 것이다. 문턱은 장애인들도 마음껏 드나들 수 있도록 아주 낮고, 문은 널찍하게 만들 예정이다. 값은 가난한 이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1000원 미만으로 정할 생각이다. 원가 절감엔 자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