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협회에 매달 기부하는 3088명] "넉 놓고 있는 내게 100만원을 주더니…"

"집이 물에 잠겨서 넋 놓고 있는데, 100만원을 딱 쥐여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아세요?"

17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반지하 주택. 4평(13㎡) 남짓한 방에 화장실과 부엌이 딸려 있는 이곳은 양대승(57·택시 기사)씨의 보금자리다. 양씨의 집은 지대가 낮아 2010년과 2011년 집중호우 때마다 물에 잠겼다. 양씨는 당시 재해의연금 지급 대상자로 지정돼 국민 성금을 각각 100만원씩 받았다. 양씨는 그 돈으로 20만원짜리 침대를 마련하고, 장판을 바꾸고, 벽지를 덧댔다. 그는 작년 1월 자기에게 온 돈이 국민이 모아 준 성금이란 것을 알게 됐다. "기금 잘 썼느냐고 묻는 전화가 와서, 그 돈을 누가 준 거냐고 물었습니다. 국민이 모아줬다 하더군요. 그제야 그 돈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매달 1만원씩 희망 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양씨처럼 태풍이나 폭설 등 재해 피해를 본 이재민들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분배해주는 법정 구호 기관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재해의연금은 단발성으로 걷히는 줄 알지만, 매달 정기 기부를 하는 사람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2010년 11월부터 정기 기부를 받기 시작했다"며 "재해의연금 수혜자들에게 안부 전화를 돌리다가 '나도 수재민을 돕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많아 정기 기부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3088명이 정기 기부에 동참했다. 이 중 2990명(97%)은 '수해를 입어 국민 성금을 받은 사람'이다. 이들 중 82.8%가 연소득 2000만원 미만인 서민이다. 이들이 매달 5000원, 1만원, 2만원씩 협회에 기부금을 보내고 있다.

협회에는 이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쌓여 있다. '도움을 줘서 고맙고, 나도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편지에는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었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해를 입어 재해의연금 100만원을 받은 이민식(가명·경남 하동군)씨는 편지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에겐 큰 보탬이 됐습니다. 세입자인 제겐 집 수리는 무리고…. (그 돈으로) 곰팡이 약도 넉넉히 사서 뿌렸고, 심해진 아이들 피부병 치료제를 사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라고 적고, 정기 기부(월 1만원)를 시작했다. 2011년 집중호우로 집이 침수된 박강태(가명·서울 동작구)씨는 "순식간에 제 방에 물이 1m 높이로 들어찼습니다.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은 몽땅 물에 잠겨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요. 여러 가지 질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며 어렵게 살아왔는데, 살아갈 욕망까지 잃었습니다. 다행히 국민이 기부한 정성 어린 성금 덕분에 생계의 안정을 찾게 됐습니다. 사랑을 나눠준 이웃들의 마음에 감사드리며, 저도 희망을 나눠주며 살겠습니다"라며 정기 기부(월 5000원)를 시작했다.

2010년 태풍 곤파스에 집이 침수된 유한명(가명·인천 남구)씨는 일정한 벌이가 없는데도 2011년 1월부터 월 1만원씩 기부하다 지난 2월에는 기부금을 2만원으로 올렸다. 유씨는 "태풍 올 때마다 집이 침수돼서 태풍의 '태'자만 들어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재민들과 똑같은 입장이니까 안쓰러운 건 말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왜 굳이 기부를 하느냐는 질문엔 "도움받고 그냥 있나요? 당연히 갚아야죠" 하고 답했다. 2011년 1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2만원씩 기부금을 내는 이상훈(가명·부천 원미구)씨도 마찬가지다. 12평짜리 반지하 전셋집에 사는 이씨는 "나도 힘들 때 도움받았으니 기부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뉴스에 이재민 얘기 나오면 마음이 아파요. 저도 겪어 봤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힘들 때 서로 도와야죠. 안 그런가요?" 이씨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