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 모교 살리려 나선 택시기사 동문들

16일 오후 강원 강릉시 왕산면 왕산초교. 백두대간 대관령 기슭에 있는 이 학교에선 전교생이 참여한 가운데 꽹과리와 징을 치는 사물놀이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도심 학교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했겠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주변에 학원이 없어 오후까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딱 10명뿐이다. 1936년 개교, 7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뿌리깊은 학교이지만 재학생은 1·3·5학년 각 1명, 4학년 2명, 6학년 5명이 전부다. 내년 2월 6학년이 졸업하면 재학생은 5명이 된다. 1학년생이 들어올지도 불투명하다.

1970년대만 해도 이 학교 학생은 2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역 농업이 쇠락하고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학생 수가 줄어 결국 폐교 위기까지 왔다. 지난 6월 통폐합 공청회가 열렸고, 내년 1년 동안 학생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2014년에는 폐교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 학교 6학년 최희진양은 "학교가 없어지면 정말 슬플 것 같다"며 "후배들은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과 동창회가 눈물겨운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이 학교 출신인 전명구(65)씨는 "초등학교가 없어지면 마을 사람 공동의 추억과 꿈도 사라진다"며 "고령의 주민들이 모교에서 뛰노는 손자 손녀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들자는 데 주민들의 뜻이 모였다"고 했다.

이 학교에 다녔던 왕산면 도마1·2리, 목계리, 왕산리 4개 마을 주민들이 매년 마을당 5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의 현장교육 기금을 모아 동창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이들 주민 850여명의 85% 이상이 70대 이상의 고령자여서 먹고살기도 빠듯하지만, 추억이 담긴 모교 살리기에 선뜻 나선 것이다. 동창회는 이 기금으로 '전교생'을 매년 여름·겨울 방학 기간 일본·중국 등 해외에 보내기로 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아이들의 체재비와 항공료 등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창회는 또 중국 등 해외 어린이와 가족을 지역으로 초청, 왕산초교 재학생과 어울리게 하는 '글로벌 교육의 장'도 마련키로 했다. 마침 국비 53억원을 지원받아 왕산면을 체류형 관광지로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했다.

강릉 시내에서 이 학교로 가겠다는 아이들에겐 특별한 서비스도 주어진다. 택시를 운전하는 동문 30여명이 무료로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택시 운행이 없어 쉬는 날을 이용해 순번제로 학생들을 태워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