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오르며 흘린 땀이 아이들을 바꿨다

16일 오후 5시 제주시 제주고 체육관. 높이 3m, 폭 25m 인공 암벽 아래로 스포츠클라이밍(암벽등반) 동아리 학생 20여명이 모여들었다. 암벽타기용 안전장비와 신발을 갖춰 신은 학생들은 스포츠클라이밍 강사 오경훈(44)씨의 설명과 동작에 집중했다. "자, 벽에 매달릴 때는 손을 쭉 뻗고 팔꿈치를 굽히면서 반동을 주면서 올라가야 하는 거야. 알겠지?" 오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손에 하얀 송진을 묻히고 손을 툭툭 털더니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칭 '한라봉 재배 농사꾼'인 오씨가 제주고에서 학생들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4년 전부터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운 오씨는 대한산악연맹뿐 아니라 세계산악연맹에서 스포츠 클라이밍 심판으로 활동해왔다. 고교생들에게 클라이밍을 가르치고 싶었던 그는 수소문 끝에 당시 제주고 이승아(44) 교사를 만나 제주고에 스포츠클라이밍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 삼성꿈장학재단의 재정 지원을 받아 현재 80여명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다.

오씨에게 모여든 아이들은 문제아로 통하는 '만만치 않은 학생들'이었다. "집에 가서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한참 게임을 하다 보면 오전 6시"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게임중독에 빠진 A군, "학교에 가는 건 시간낭비라 다닐 이유 없다"는 B군,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생들을 괴롭혀 '학교폭력 가해자'로 사는 C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증후군) 때문에 산만한 학업 부진아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왕따' D군 등이 오씨를 찾았다.

"가정 생활이 어려운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조손(祖孫) 가정 또는 한 부모 가정이에요. 방과 후 애들이 갈 데가 없어요. 축구를 해도 한두 시간입니다. 당구장이나 PC방으로 빠질 수밖에 없지요. 집에 부모가 없어 통제할 사람이 없으니 밤새 게임을 하다 학교 오면 자는 겁니다.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요."

오씨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이들을 다잡기 시작했다. 아이들 대화 80%가 욕이고, 심지어 오씨에게도 욕설을 내뱉었다. 오씨는 클라이밍 중 욕은 한마디도 못하게 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학생을 붙잡아 장애학생에게 클라이밍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시키는가 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청소년을 위한 책도 수시로 읽혔다. 평일에는 학생들과 함께 밤 9시까지 암벽타기를 하고, 주말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한라산으로 암벽 등반을 떠났다.

'문제아'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다 숨을 고르기 위해 모여앉은 바위에서, 산행 후 함께 식사하던 식탁에서 학생들은 마음을 털어놨다. 욕하는 아이들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코피를 쏟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 있던 게임중독 학생들은 컴퓨터를 멀리했다. 자퇴하려던 학생은 학교로 돌아왔고, 꼴등을 면치 못하던 내신성적이 4등급 이상 상승했다.

제주고 교사들은 일주일 내내 학생들과 함께하는 오씨를 '고등학교 돌봄 교실(보육) 교사'라고, 학생들은 '대장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한참 땀을 흘리며 벽을 타다 '요새 어떤지' '고민이 뭔지' 슬쩍 묻고, 그저 들어줍니다. 학생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고충이 있습니다. '나와 같은 편이다'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