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중화요리점 닫고 공원서 잔치마당

전북 군산시 소룡동 동아아파트 입구 소공원은 지난 17일 낮 어르신 잔치마당으로 바뀌었다. 간이무대 앞에 의자 200여개가 놓이고 그 양편으로 80명이 함께 앉을 식탁이 길게 놓였다. 자장면으로 점심을 모시는 행사지만 소룡동과 인근 산북동 일부 어르신들은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오전 10시 30분 무대 옆 천막 아래 대형 버너들에 불이 지펴졌다. 큰 솥 5개에서 자장과 면(麵), 탕수육이 한꺼번에 조리됐다. 동네 새마을부녀회원들은 배식대에서 큰 쟁반에 따끈한 자장면과 탕수육, 단무지, 양파들을 올려 식탁으로 날랐다. 설거지에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어르신들이 자장면을 시식하는 사이 무대에선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60대 시니어 악단의 반주 속에 '개나리 처녀' '신라의 달밤' 등 가요가 신나게 이어졌다. 어르신 다수는 자장면 그릇을 비운 뒤 객석과 주변 정자로 옮겨 앉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무대 앞에서 덩실덩실 춤 추는 어르신도 있었다. 식사는 오후 1시 전에 모두 끝냈지만 노래자랑은 2시까지 이어져 무대에 나선 어르신만 80여명에 이르렀다.

이날 '어르신을 위한 사랑의 자장면 무료 나눔' 잔치는 소룡·산북동 중화요리점 9곳이 함께 마련했다. 산뜻한 빨강색 유니폼의 조리사 모두는 바로 이 음식점 사장님들이었다. 사장님들은 이날 하루 일제히 식당 문을 닫고 공원으로 나와 가스 버너를 놓고 조리대와 배식대를 차렸다.

소룡·산북동에서의 어르신 자장면 잔치는 봄가을 한 차례씩 열린다. 2010년 가을 시작, 17일로 다섯 번째 치렀다. 이날은 오전에 가랑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쌀쌀해 500여 어르신밖에 모시지 못했지만, 작년 가을과 올 봄에는 800여명이 참석했다.

중화요리점 사장님들이 자장면 잔치를 마련한 것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별미를 지어올리며 잠시 외로움을 잊게 해드리자는 뜻이었다. 사장님들은 40~60대로 다수가 '철가방' 배달로 시작해 조리를 배우고 어렵게 가게를 냈기에 어르신들의 힘든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코코·명성·동해반점과 용미장·요리왕·대명관·정짜장·따봉각의 사장님들은 북경반점 홍성국 대표의 제안으로 아예 '참샘봉사회'를 만들었다. 매월 한 차례 모임을 정례화하면서 회비를 모아 대형 가스버너들과 조리·급식대, 그릇들을 늘려왔다. 잔치에 쓸 식재료도 모두 회비로 구입한다.

동네 노인요양원 '행복한 집'에서 시작된 잔치는 주민센터 옆 경로당과 교회 마당, 사우나 주차장으로 이어졌다. 작년 봄부터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급식과 설거지를 맡아주었고, 퇴직 공무원 밴드인 '지란지교 문화예술단'이 노래 반주를 자원했다.

동네 배달 오토바이 수리점과 잔치 후 어르신들에게 선물할 라면·과자·캔음료 등을 공급하던 마트까지 봉사회원으로 가입했다. 동네 신협·새마을금고·교회·사우나 등 10여 곳에서 라면 등을 보내왔고 4개 아파트 주민자치회에서 천막을 빌려줬다.

소룡·산북 두 동네엔 저소득층이 997가구, 독거 어르신이 422가구에 이른다. 황대성 소룡동장은 "넉넉지 않은 중화요리점 사장님들의 선행이 동네에 온기를 불어 넣으면서 화합의 촉매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웅다웅하던 봉사회원 부부들은 잔치 전날 함께 모여 선물꾸러미들을 채우며 한 가족이 된다. 봉사회 홍성국 대표는 "작은 정성을 받아주며 격려해주시는 어르신들이 고맙고, 생업에 보람도 느낀다"며 "차량만 지원된다면 군산시내 장애인들도 모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