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자녀들의 '키다리 삼촌'… 19년째 장학금 선물

"지난 6년간 아버지 대신 학비를 주신 덕분에 공고를 무사히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습니다. 항상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움츠리고 살았는데 장학금 받아 행복했습니다."(살인죄 저지른 수형자의 아들 A씨·34)

"바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죄수의 가족을 위해 어렵게 버신 돈을 선뜻 주시고, 가족도 만나게 해줘 감사합니다."(살인죄로 무기징역 선고받은 B씨·65)

"나는 범죄자라 감옥에 있고 여자 몸으로 돈 벌기가 너무 힘들다며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 주신 덕에 우리 부부도 서로 다독이며 살아보기로 했다."(살인 저지른 수형자 C씨)

이들이 한결같이 감사를 표시하는 대상은 조중래(62)씨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자수성가해 대구에서 조그마한 직물 회사를 운영하는 조씨는 1993년부터 안동교도소에 있는 수형자 자녀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1998년 IMF로 사업이 망하고 신용불량자가 됐을 때도 장학금을 기탁했다.

그가 처음부터 재소자 자녀들을 도우려 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출소자의 취업을 돕는 일이었다. 아는 사람이 "출소자가 있는데 당신 공장에 취업 좀 시켜주면 안 되겠나" 하고 부탁해왔다. 1987년의 일이다. 출소자 한 명을 채용했더니 "일이 힘들다"며 3개월을 못 버티고 그만뒀다. 하지만 몇 명 더 추천받아 고용해봤더니 작은 보람이 생겼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주니 출소자들이 가정을 꾸리고 결근 없이 성실히 일하며 재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씨는 출소자와 교도관에게서 "수형자 중에 배우자가 도망가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때문에 방황하던 자녀가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잘 지내면 수형자도 교도소 생활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조씨는 "부모가 죄지었다고 애들이 사회에서 버림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소자 자녀를 위한 '키다리 아저씨'로 변신키로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억울한 건 피해자인데 죄짓고 감옥 간 사람 가족까지 챙겨야 하느냐"고 반대도 했다.

"저도 원래는 좌우명이 '뿌린 대로 거둔다'라예. 나쁜 일 하면 자식대에라도 벌을 받는 게 맞지예."

조씨는 생각을 바꾼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출소자를 자주 만나다 보니 죄는 밉지만 부모 잘못 때문에 애들이 엇나가고 범죄자가 되면 우리 사회에도 안 좋은 일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면서 "애들 보살펴서 범죄 대물림 막는 게 더 큰 복 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조건을 거는 바람에 기부 사실은 5년 전에야 알려졌다. 막내아들 대식(33)씨는 "아버지는 1t트럭이나 경차만 몰고 다니고, 외식이라고는 국밥밖에 모르는 분이라 가족도 장학금 내는 걸 전혀 몰랐다"고 했다. 조씨는 장학생이나 수형자가 보낸 편지를 읽고 불태운다. "남들에게 편지 보여주면서 잘난 척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장학금 수여식은 매년 방학에 맞춰 2월과 8월 안동교도소에서 열린다. 조씨는 장학금을 줄 때부터 "출소해도 가족끼리 서먹해지지 않으려면 서로 부대껴야 된다"며 수여식에 수형자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안동교도소 관계자는 "특별 면회가 어렵던 시절에는 서로 부둥켜안고 우느라 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며 "모범 수형자에게만 자녀 장학금 혜택을 주기 때문에 수형자들은 교도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조씨는 요즘도 장학금을 주는 날이면 은행에 들러 "빳빳한 '새 돈'을 달라"고 한다. "일단 새 돈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허투루 안 쓰고 아껴 쓰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씨가 건네는 장학금에는 딱 하나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다. "(나한테) 은혜 갚을 생각 말고, 너희가 성공하면 더 어려운 사람 2명씩만 도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