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감독도…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나오나

최근 연출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아직은 단편의 비중이 크지만 극장에 걸리는 장편 상업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드는 '배우 겸 감독'도 늘고 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감독상 등을 받은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로버트 레드포드,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명배우 감독'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13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선 배우 출신 또는 겸업 감독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다. 방은진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용의자 X'가 첫선을 보였는가 하면 유지태의 첫 장편영화 '마이라띠마'가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윤은혜의 첫 단편영화 '뜨개질'가 와이드앵글 한국 단편 경쟁부문에 각각 올랐던 것. 또 배우 구혜선이 연출하고 조승우·류덕환·남상미 등이 주연한 '복숭아나무'가 오는 30일 개봉한다. 이외에도 배우 박중훈은 내년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연출 데뷔작 '톱스타'를 준비 중이다. '똥파리'(2010)로 화제를 모았던 양익준도 원래는 독립영화계에서 잘 알려진 배우로 현재 최고 시청률을 올리는 TV 드라마에도 나오고 있다.

과거에도 배우가 메가폰을 잡은 경우가 있었지만 성공한 예는 거의 없었다. 톱스타였던 고(故) 최무룡과 신성일의 연출작들이 이들의 출연작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연출을 따로 익히지 않은 채 연기자로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곧바로 연출에 뛰어들었다. 반면 현재의 배우 감독들은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하고 감독으로 데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지태와 윤은혜의 데뷔작은 모두 대학원(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든 작품이었고, 구혜선은 감독 데뷔작 '요술'을 내놓은 이후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성균관대 예술학부에 입학했다.

배우들의 감독 데뷔에 대해 영화계에선 "감수성이 뛰어나고 영화에 대해 애정이 많은 배우들이 감독을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들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기본적인 연출 실력을 갖췄다는 전제하에,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얻은 경험을 연출에 활용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배우의 인기나 인지도를 이용해 감독 데뷔도 일반 감독 지망생들보다 쉽게 할 수 있고, 작품성과는 별개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제작사 대표는 "일부 배우들은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영화를 연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영화를 전공하는 일반 학생이 만든 영화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전찬일씨는 "배우 출신 감독의 강점은 연기를 직접 해봤다는 사실"이라며 "그들이 감독으로서도 성공하려면 그 점을 최대한 활용, 연기자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는 연기 연출을 하고, 연기자와 감독 사이의 벽을 열어놓는 등 배우 출신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