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재산·직업·집안… 19세기 결혼, 지금과 똑 닮았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기념비적인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불후의 고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 SAT 추천도서라거나,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든가 하는 수식 없이도. 하지만 언젠가 나는 이 소설을 현대판 '칙릿'의 원형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은 칙릿의 어머니고, 그녀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연애소설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이다.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우리는 소설의 주인공 '미스터 다아시'의 연 수입을 알 수 있다. 1만 파운드! 딸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남자 집안의 재산을 꼼꼼히 따져 묻는 부모들의 행동은 어떤가. 재산이 5만 파운드가 있고, 개인 마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정원이 몇 야드고, 하인이 몇 명인가를 따지는 모습은 아파트가 몇 평이고, 부모나 형제의 직업은 무엇인지 따지는 지금의 결혼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제인 오스틴은 직업에 대한 당시 19세기 사람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변호사나 군인, 해군 제독들은 품위 있는 직업이지만, 의사란 비천한 직업이라고 잘라 말한 것이다. 아침 드라마에 이런 식의 대사가 등장한다면 특정 직업 비하라며 당장 악플 몇백 개는 거뜬할 만하다.

하지만 '결혼'이란 인류 보편의 문제이고, 결혼의 상대자를 찾는 것은 엄연히 후손을 이어 자손을 번성시키고자 하는 '유전자의 명령'이다. 여성에게 직업적 자유가 부여되지 않았던 19세기의 결혼은 여성에겐 신분상승의 유일한 기회라는 점에서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소설 속에선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대책'이란 문장이 등장한다. 재산증식의 형태로 결혼을 선택했던 19세기 사람들의 속물성(남자라고 예외가 아니었다)을 가감 없이 묘사해냈던 제인 오스틴을 '세태작가'로 폄하했던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들의 속내에는 이중적인 불편함이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쓴 작가 헬렌 필딩 역시 자신의 작품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 한 적이 있다. 브리짓의 모델이 '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엘리자베스 베넷이고, 오만한 남자 '다아시'는 이 책의 남자 주인공 '마크 다아시'라는 것이다('다아시'라는 이름은 브리짓 존스의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이름이 똑같다!).

지극히 제인 오스틴스러운 제목인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같은 대립 구도들은 '칙릿' 소설들이 보여주는 남녀 관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성공하길 꿈꾸지만 직장에서 사고뭉치인 여성과 나쁜 남자가 벌이는 사랑 이야기가 현대판 연애소설의 서사가 아닌가.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라 불리는 장르 역시 그렇게 탄생한다. 로라 애프론의 영화 '유브 갓 메일'에 등장하는 '캐서린'(그녀는 '오만과 편견'을 200번이나 읽었다!)과 '조'는 제인 오스틴 소설의 남녀 주인공의 갈등을 20세기 말 뉴욕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있다. 영화에 미국식 '스타벅스'가 등장한다면, 오스틴의 소설에는 영국식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가 등장한다. 하루키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존 어빙이 찬양하는 19세기 소설, 예를 들면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와 그들이 쓴 소설 역시 내용적으로는 거의 같다 할 수 있고 반복이랄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정형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질리지 않아요. 제인 오스틴은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인과관계' 역시 뚜렷하지 않은 지금의 사회와 현대소설의 경향성이 심리적 피로함을 주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이 가지는 미덕들, 엄청난 고난 끝에 행복이 찾아오고, 오해는 이해로 끝내 마감되며, 사랑은 이루어지고, 악인은 망하고야 마는 이토록 명료한 시절에 대한 향수가 사람들로 하여금 몇 번이고 이 오만한 남자와 자존심 강한 여자의 '밀당(밀고 당기기)'에 매료되게 하는 것이다. 여자는 콧대 높은 오만함이 아닌 남자의 자신감과 진정성을, 남자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아닌 여자의 건강한 주체성을 깨닫게 된다는 성장의 메시지는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이어지게 될 하나의 모티브. 사랑은 고난 끝에 끝내 이루어지리라는 제인 오스틴의 영원한 주술까지.

140자 트윗독후감

"200년 전의 인간들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가깝게 다가왔던 소설입니다. 사랑에 따르는 책임과 포용으로 이어지는 해피엔딩. 오만과 편견을 딛고 올라선 우리의 주인공 커플. 훈훈한 인간의 본성을 만나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페이스북 응모자 최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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