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Small Champion] '자동 개줄' 제조 獨플렉시社

품질로 中저가공세에 맞서
품질 테스트 불합격 땐…제품 조립한 직원 찾아,이틀치 생산분 전량 폐기

하청기업 없이 자체 생산…도시용·전문가용…다양한 기능·디자인 개발

40년간 2억개 팔아
엘리자베스 여왕도 고객…유럽 재정위기 와중에도…올해 직원수 50% 늘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모나코 왕비, 일본 왕세자비…. 소문난 애견가인 이들은 애견과 산책할 때 같은 회사의 개줄을 손에 쥔다. 독일 함부르크 인근 소도시 바르그테하이데(Bargteheide)에 있는 플렉시(Flexi)사(社)가 만든 제품들이다. 플렉시의 간판 제품인 '자동 개줄'은 애견이 주인으로부터 멀리 가면 10m까지 늘어나지만 위급 상황에서는 버튼 하나로 줄을 고정시킬 수 있다. 주인의 통제 아래 애견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게 강점이다. 15유로(약 2만1600원)부터 181유로(약 26만원)까지 가격도 다양하다.

만프레드 보그단(Bogdahn·71) CEO가 1972년 자동 개줄을 발명해 창업한 플렉시는 40년 동안 개줄 한 품목만을 고수해왔다. 94개국에 판매된 개줄은 총 2억여개. 세계시장 점유율 70%이다. 200여명의 종업원이 2010년에 5000만유로(약 7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디다스·몽블랑·BMW 등 독일 유명 기업과 함께 '도이체 스탄다즈'가 선정(2010년)한 '세기의 브랜드'에 뽑혔다. "유럽 재정위기 와중에도 지난해 208명이던 종업원 수를 올해 300명으로 늘릴 정도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5일 오전 9시쯤 개집 모양을 한 플렉시 본사에 직원들이 애견을 데리고 출근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에는 사내 애견 놀이방에 맡겨둔다. 복도 곳곳에는 직원들이 그린 애견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애견 천국(天國)' 같았다. 보그단 CEO도 자신의 폭스테리어 '리사'와 함께 취재에 응했다.

①아이디어를 현실로 이끌어내라

그는 40년 전 개줄을 손에 감은 채 애견 두 마리와 산책하다가 '개줄 길이를 자동 조절할 수 없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1972년에 전기톱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전기톱 시동줄 원리를 개줄에 도입하면 어떨까 했어요. 좋은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킨 게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1973년 은행에서 2만마르크(당시 약 246만원)를 빌려 첫 제품을 시판한 후 플렉시는 지금까지 340여개의 자동 개줄을 내놓았다. "저는 우리 제품이 사람과 개를 잇는 하이테크 제품이라고 확신해요. 매년 9개 가까이 신제품을 내며 품질과 디자인을 혁신하고 있어요."

R&D팀에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석·박사 10명이 근무 중이다. 다양한 줄의 두께, 길이, 재질, 또 고객에 맞는 사이즈, 제품이 버틸 수 있는 온도, 강도 등을 연구한다. "불에 대보기도 하고, 애견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줄에 달아보기도 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보지요." 개줄 관련 특허를 20여개 갖고 있는데 유럽·미국·아시아 등 주요 국가에 회사의 모든 특허를 등록해놓을 만큼 관리도 철저하다.

②위기 극복의 최대 무기는 '품질'

이날 낮 본사 옆 삼각형 지붕의 '개집 모양' 공장에는 흰 옷을 입은 검침원들이 돌아다니며 무작위로 제품 검사를 하고 있었다. 검침 기계로 자동 개줄을 150만번 당겨도 제품이 멀쩡하면 합격이다. 불합격 판정이 나오면, 제품 번호를 추적해 그 제품을 조립한 직원의 이틀치 생산분 전량을 폐기시킨다. 보그단 CEO는 "중국산은 대부분 5000번 정도 끈을 당기면 제품이 부러진다"며 "우리는 테스트 기준을 300만번까지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플렉시는 2009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최대 고객인 미국 월마트가 플렉시 제품 비중을 줄이고 값싼 중국산 자동 개줄을 대량 사들여 위기에 몰렸다. 보그단 CEO는 "위기를 이겨낸 원동력은 품질이었다"며 "다른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불량 신고가 쏟아지자 월마트가 다시 우리 제품 비율을 늘렸다"고 했다.

플렉시는 하루 평균 5만개의 자동 개줄을 생산한다. 모든 공정을 자체 제작하며 하청 기업을 두지 않는다. 부품 조립은 100% 사람 손으로 한다.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 자동화를 도입해봤지만 불량률이 높아져 수제(手製) 조립으로 돌아섰다.

③"경영진이 회사의 A부터 Z까지 훤해야"

"이런, 마지막에 줄을 두 번 당겨서 테스트해야 되는데, 한 번만 했네요."

보그단 CEO는 조립 라인의 한 여성 근로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장이지만 내가 제품 제작의 모든 공정에 가장 정통하다. 340여개의 제품도 내가 가장 먼저 테스트해 봤다"고 했다.

자동 개줄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면 그는 눈을 반짝이며 번개처럼 대답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밤에 산책할 때 보기 쉽게 야광 개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말하자, "우리도 시도해봤는데 야광 염료를 넣으면 끈의 내구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했다.

"미래에는 CEO의 영감, 도전의식이 기업의 존망을 좌우할 겁니다. CEO가 제품의 모든 부분과 업계 동향, 직원 모두를 소상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플렉시는 매월 300여명의 직원들과 파티를 연다. 매년 모든 임직원 자녀들을 초대해 놀이공원 소풍을 가기도 한다. "CEO와 직원들이 열정을 갖고 즐겁게 일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는 시작할 때 2만마르크를 빌린 뒤 한 번도 은행 돈을 빌린 적이 없어요. 남의 돈을 빌려 일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재밌게 일을 할 수 없어요."

④"엄청난 열정을 갖고 한우물만 판다"

플렉시 제품의 평균 사용기간은 10~15년. 고장 난 제품을 본사로 제품을 보내면 무료로 수리해 보내준다. 회사 홈페이지에 종종 고객들이 '애견 세 마리를 플렉시의 자동 개줄 하나로 키웠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내구성이 좋은 덕에 제품이 거의 고장 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용도, 디자인을 개발해 새 시장을 창출하고 있지요."

플렉시는 끈 길이가 2m인 도시용부터 10m에 이르는 전문가용 등 다양한 길이의 제품을 생산한다. 어두운 밤에도 개줄을 볼 수 있는 '네온',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장식해 만든 '글램' 등 한정판들도 인기다. 최근에는 가죽을 덧댄 고급 제품과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화려한 디자인의 제품들도 내놓고 있다.

다른 애견용품 분야로 사업 확장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보그단 CEO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가지만 합니다. 대신 어마어마한 열정을 갖고 하지요. 이게 모방 기업들이 우리를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