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업종 긴급 점검] 석유제품, 한국 수출 1위 등극… 반도체도 제쳐

올 1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은 4084억달러(450조4652억원). 이 가운데 1위는 415억달러로 전체의 10.2%를 차지한 석유제품이었다. 이 추세대로 가면 석유제품은 올해 수출액 550억달러를 기록하며, 국내 수출 품목 중 사상 처음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제품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와 조선, 액정디바이스, 휴대폰 등을 제치고 수출 1위에 오르는 것이다.

◇대형 공장으로 규모의 경제 이뤄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만든다. 국내 정유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원가 경쟁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유 정제능력 기준으로 SK에너지 울산공장이 세계 2위, GS칼텍스 여수공장은 3위, 에쓰오일 온산공장은 7위 규모를 각각 자랑한다.

가까운 일본은 전체 원유 정제규모가 하루 427만배럴에 달하지만, 27개 공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공장당 정제 능력은 16만배럴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하루 정제량 278만배럴이 공장 5개에 집중돼 있다. 공장 한 곳 당 정제능력은 56만배럴로, 일본의 3.5배 크기다.

2000년대 후반 들어 각 정유사가 값싼 벙커C유를 원료로 경질유를 생산하는 고도화 설비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도 석유제품 수출을 늘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SK에너지 등 정유 4사가 고도화 설비에 투자한 돈은 10조원에 달한다. 2007년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75.8%에 그쳤던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경질유의 비중은 올 상반기 85%로 늘었다.

국내 환경 기준도 경쟁력 강화에 일조했다. 한 정유사 임원은 "황 함량 규제 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수준"이라며 "여기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세계 어느 국가든지 수출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업체들은 수출 물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2003년 2억900만배럴에서 계속 증가해 지난해 4억1200만배럴을 기록했다. 2009년 국내 수출 제품 가운데 9위였던 순위는 지난해 선박류에 이어 2위까지 뛰어올랐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이 정제 능력을 키우고 수출 지역을 다각화하면서 물량이 급증했다"며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국에 유리했다"고 말했다.

◇2분기 부진 털고 하반기 회복 기대

뛰어난 경쟁력에도 국내 정유업계는 올 상반기에 사상 최악의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정유업은 국제유가의 흐름에 따라 실적이 결정되는 '천수답(天水畓)'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유를 싸게 사 와서 정제한 석유제품을 비싸게 팔면 이익이 난다. 반대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팔면 손해를 보는 구조다.

2분기엔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업체들의 실적도 망가졌다. SK에너지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2분기 영업손실 1054억원을 기록했다. 9년 만에 첫 분기적자였다. 에쓰오일도 정유부문에서만 영업적자가 4817억원에 달했다.

3분기에는 국제 유가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실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이응주 연구원은 "3분기 정유시황이 반등하면서 정유회사들의 이익은 1분기에 버금갈 전망"이라며 "4분기에도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05~110달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본업인 원유 정제뿐 아니라 PX(파라자일렌) 등 석유화학 시설투자를 늘려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합성섬유 공장이 대거 증설되며 그 기초원료인 PX 가격은 내년까지 강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윤활유 시장도 중국 자동차 시장 확대, 각국 연비규제 등을 배경으로 회복되고 있어 비(非)정유부문 이익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