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식당 운영 고준구씨, 술 취해 온 사람 안받아 단체손님 중 1명이라도 만취땐 모두 매몰차게 내쫓아… '최악 서비스' 악플 시달렸지만 "주폭 없는 가게" 입소문, 저녁이면 12평 공간 꽉차
대전광역시 중구 유천동 극동상가에 가면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식당이 있다. 삼겹살도 팔지만 주 메뉴는 껍데기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 가게를 검색하면, "주인이 정말 싸가지가 없어요" "정말 몰상식한 주인입니다. 기분 다 망쳤네요" "술 취한 손님에게 사장이 욕도 합니다" 등의 평들이 쏟아진다. 그 밑에는 '사상 최악의 서비스'란 악플도 줄줄이 뜬다. 최근 5년간 대전 중구청에 '불친절한 식당'으로 접수된 민원 신고만도 12건이다.
그래도 이 가게는 매일 저녁이면 약 40㎡(12평) 남짓한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인기다. 멀리 대전광역시 밖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다. 부추와 어울린 독특한 맛보다 더 소문난 것은 이 집만의 주도(酒道)와 '특별난 사장님'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대전시 중구 유천동에서 10년째 껍데기집을 운영하고 있는 고준구(42)씨가 ‘술 드시고 오신 분, 술을 판매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 앞에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권투 선수였던 고씨는 5년 전부터 ‘주폭 뿌리 뽑기’에 앞장서 유천동 일대의 주폭이 크게 줄었다. /신현종 기자
10년째 이곳을 운영하는 고준구(42)씨. 165㎝ 정도 되는 작은 키에 짧게 자른 머리, 몸에 딱 달라붙는 남색 티셔츠와 운동복 하의를 입은 그는 외모부터 '친절한 사장님'과는 거리가 멀다. 가게 벽에는 '술 마신 사람에게는 술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문구와 함께 '한잔의 술에 벌금 또는 교도소'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반대편에 걸린 달력의 숫자 위에는 볼펜으로 쓴 '남2, 여1', '남2, 여3'과 같은 메모가 어지럽게 적혀 있다. 고씨가 돌려보낸 술 취한 손님 수를 센 것이다. 고씨는 자신을 '주폭(酒暴) 잡는 꼴통 사장'이라 소개했다.
소년체전에서 금메달도 따고, 한때 신인왕도 차지했던 유망 권투선수 출신인 고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했는데 매일 밤마다 주폭들 때문에 가게가 성한 날이 없었다"면서 "늘상 우는 어머니를 보며 '챔피언이 돼 주폭들을 혼내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씨는 1991년 태국 원정 경기에서 상대의 팔꿈치에 오른쪽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빠지면서 권투를 포기했다.
그런 고 사장은 가게를 차린 뒤 몇 가지 '술 규칙'을 정했다. '이미 술 취해 온 사람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술을 판매하지만 취한 손님은 즉시 돌려보낸다', '밤 11시가 되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등이다.
5년 전 이런 규칙을 처음 만들 때는 술 취한 손님들과 매일 밤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어떤 취객은 내보내려 하면 술병을 깨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고씨는 강제로 끌어내다시피 해 결국 이들을 죄다 쫓아냈다. 쫓겨난 손님 중에는 고씨가 욕을 했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경찰들이 '살살 좀 하라'며 저를 달랬어요. 하지만 주폭질을 어떻게 두고 봅니까. 이젠 경찰이 신고를 받으면, '그 집은 원래 술 취하면 못 있는다'고 신고인에게 말한대요."
고씨의 소문을 듣고 주폭에게 시달리던 이웃 가게들도 앞다퉈 고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유천동 일대의 주폭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상가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전은호(51)씨는 '한때 이 동네는 주폭의 천국이었다'고 말했다.
고씨의 가게는 늘 만원을 이룬다. 술을 마시더라도 대부분의 손님은 취하기 전 일어나 집으로 돌아간다. 고씨 가게의 규칙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단골인 이희성(36)씨는 "처음엔 정말 무서웠다"며 말을 꺼냈다.
"술 취한 손님한테 사장님이 막 욕을 하면서 쫓아내더라고요. 분위기가 험악해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사장님이 보호해주고 있단 느낌이 들어요."
고씨는 단체 손님이 찾아와도 그중 한 명이라도 취해 있으면 매몰차게 쫓아낸다. 미성년자는 물론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1993년생(만 19세)에게도 술을 절대 팔지 않는다. '아직 어른이 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벌써부터 술을 먹어선 안 된다'는 게 고씨의 생각이다. 고씨는 술 취한 사람에게 계속 술을 파는 상인들도 문제라고 한다. 자기 가게를 '스스로 주폭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란 것이다.
"애주가 여러분, 제발 술은 적당히 드시고 집에 가 주무세요. 공부도 1등이 좋듯 술도 1차에서 끝냅시다." 고씨가 단골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