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제 옷에 만족해하는 사람들 보면 보람"

"제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만족과 자신감을 느낄 때 패션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을 느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인 스물한 살 때 패션디자이너로서 발을 내디딘 대구의 대표적인 패션디자이너 박동준(61)이 패션인생 40돌을 맞았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박동준이 패션에 눈을 뜬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깝다.

"모친이 패션이나 장식 등과 관련해 미적감각이 탁월하셨어요. 저는 그런 감각을 물려받았나 봐요."

세상 물정을 알 때부터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으나 당시 대학에는 패션과 관련한 학과가 없었다. 그래서 고(故) 정점식 화백이 강의를 했던 미술 관련 학과 과목을 듣는 등 예비 디자이너로서의 준비작업을 하나둘씩 해나갔다.

그러던 중 대학 4학년인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인생의 바퀴는 박동준이 패션디자이너가 되도록 굴러갔다. 그때 모친이 의상실을 인수하게 됐고 복장학원에서 패션 일을 배웠다. 더욱이 국내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인 이종천 선생을 만나 배우게 된 것이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패션디자이너 활동을 하면서도 배움은 계속돼 26세때 대학원에서 미술교육과를 이수했고, 이어 의류학과의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강의도 열심이어서 지금도 계명대 패션디자인 대학원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패션 분야에서 독특한 실험 내지는 활동을 펼쳐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다.

2004년 대구 중심가에 있던 패션숍을 중구 대봉동에 새로 건립한 건물로 이사했다. 이 건물이 당시 화제가 됐던 'P&B아트센터'. 패션숍, 갤러리, 도서관, 소극장, 카페가 한 건물에 있는 문화공간이다.

박동준은 이곳에서 갤러리분도도 운영해 주목 받거나 촉망 받는 신인들을 위한 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 건물로 이사하면서 박동준은 또 백화점에 있던 매장을 철수시켰다.

"옷을 대량 생산하면 이익도 많이 남지 않겠느냐는 유혹도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정말로 거기에서 예외가 돼 '더 좋은 옷' '퀄리티가 높은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의 옷에 대한 욕심은 종종 다른 분야와의 이른바 협업(콜라보레이션)으로도 나타난다.

정점식 화백을 비롯 이명미, 김호득, 프리다 칼로, 피카소, 칸딘스키, 이안 베르티앙, 마크 로스코 등의 작품을 패션 작품에 녹인 것이다. 국내 최고 패션디자이너들의 모임인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에서 지방 회원으로서는 그가 유일한 것도 다 그런 연륜에서 나왔다.

그러나 박동준의 진면목은 예술과 생활의 일치에서 나온다.

그는 2004년부터 아름다운가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전국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8년째 대구경북대표를 맡아 오고 있다. 또 대구가 낳은 시인 이상화의 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창립된 이상화 고택보존운동의 창립멤버로, 현재 임시대표직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한편 박동준은 패션인생 40돌을 맞아 오는 25일 갤러리분도에서 '40's Trace'라는 주제로 조촐한 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서 이날부터 2주간 사진작가 오상택(서울예대 교수)이 '(un)Necessaries'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에서는 박동준의 의상들을 소재로 특유의 질감과 구도를 통해 옷이 가지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또 당일 오후 5시부터는 연극배우 박정자가 단편소설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중 일부를 30여분간 낭송하는 이벤트를 선보인다. 박동준이 지나온 흔적을 되돌아 보는 미디어 아트도 상영될 예정이다.

"나이 50부터는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좋은 친구인 윤순영 중구청장을 만난 행운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나 봐요."

그는 "패션 인생에서 15년 동안이 트레이닝 기간이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완숙되는 시기이며, 30년부터는 '장맛' 나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고 했다. 덧붙여 "지금도 그래 왔지만 저의 패션 작품은 품위와 현대적인 것을 아우르면서 세련된 것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