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림,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명화(名畵)가 가득 걸린 벨기에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전시실 중앙엔 정교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높이 걸려 있고, 어린 소녀가 바닥에 앉아 그 그림을 열심히 따라 그린다. 정면에서 정물화를 감상하던 관객이 한 발짝 걸음을 옮기면, 어찌 된 일일까? 우아한 정물화는 순식간에 소녀가 그린 서툰 꽃 그림으로 '변신'한다.

서울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내달 7일까지 열리는 배준성(45) 개인전 'Moving Still Life(움직이는 정물)'에선 각도에 따라 변하는 그림들이 걸린 유럽 미술관 전시실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림의 비밀'은 '책받침'. '어떻게 하면 정물(靜物)인 그림에 움직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 줄곧 고민해왔던 배준성은 초등학교 때 유행했던 3D 책받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면에서 보면 환히 웃는 스마일 캐릭터인데, 각도를 바꿔 보면 우는 얼굴이 보이는 그 책받침 있잖아요. 그 기법을 그림에 적용하면 되겠다 싶었죠." 전문적 용어로는 '렌티큘러(lenticular)' 기법. 수많은 렌즈로 표면을 구성해 각도에 따라 다른 상(像)이 맺히도록 한단다.

이번 전시에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미술관 등 유럽 미술관을 모델로 한 '화가의 옷―미술관의 유령' 시리즈 등이 나왔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는 친구의 열 살짜리 딸. 명화와 바꿔치기되는 그림도 실제 그 소녀가 그린 그림이다. 어린아이가 명화를 올려다보며 모사하도록 한 설정은 작가가 어린 시절 즐겨 봤던 만화영화 '플란더스의 개' 중 주인공 소년 네로가 성당에 걸린 루벤스 그림을 숭배하듯 쳐다보는 장면에서 착안했다. (02)732-46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