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너는 아느냐… 存在의 이유를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소슬바람이 불고, 단풍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절대고독과 신(神), 존재의 유한성에 대해 숙고하게 되는 계절. '인간'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붙들고 온 화가들이 전시회를 갖는다.

◇오원배, 實存을 탐구하다

'실존(實存)'과 '소외'는 오원배(59)가 30년 넘게 붙들고 있는 주제. 대학 시절인 1970년대엔 황석영의 '객지', 이문구의 '장한몽' 등에서, 프랑스 유학 시절인 1980년대엔 카뮈를 읽으며 인간 소외와 실존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작가는 4년 만의 이번 개인전에서도 여전히 '실존'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내달 1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회화적 몸의 언어'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공장의 삭막한 철근 구조물 사이를 부유(浮遊)하는 벌거벗은 인간 군상으로 가득하다. 꽉 짜인 구조물은 인간을 옭아매는 제도와 틀을 상징한다. "객관적 진실을 찾기 어려운 '갈등'의 시대 속 인간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인터넷 시대, 익명의 군중이 여론을 장악하면서 '이념'이 '진실'을 압도하고, '내가 믿고 싶은 사실만 진실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이 시대의 슬픔."

가로 2m 이상의 대형 켄트지 위에 거친 안료로 그려낸 그림 20여점은 대개 어둡고 우울하다. 지난해 늦장가를 가 한창 신혼을 즐기고 있는 작가지만, 그림만은 어둡다. 그는 "결혼해도 여전히 외롭더라. 절대고독이라는 건 항상 따라다니니까. 다만 내 그림이 나와 아내를 위한 '공동작업'이라는 생각이 들게 돼 작업 태도는 더 엄격해졌다"고 했다. (02)720-5114

◇권순철, 한국인의 '얼'에 천착하다

일그러지고, 뭉개지고, 짓이겨진 슬프고 고요한 얼굴들. 재불(在佛) 작가 권순철(68)이 내달 11일까지 서울 견지동 아라아트에서 여는 개인전에 건 그림들이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줄곧 한국인의 '얼굴'과 '넋'에 매달려 왔다. "비극적인 우리의 역사·상흔·투쟁을 담고 있으면서 그를 승화한 얼굴을 그려왔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 주름 가득하고, 비틀어져 형편없으면서도 극복과 초월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노인의 얼굴을 주로 그린 것은 그 때문이다.

"터미널, 서울역, 탑골 공원, 시골 장터 등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얼굴을 스케치했어요. '좋은 얼굴'이란 예쁘고 젊은 얼굴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일에 평생 몰두해 오고 삶의 고난을 무심하게 선(禪)적 경지로 끌어올린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휘몰아치는 추상적 기운을 그린 '넋' 시리즈 역시 50년 가까이 몰두해온 주제. 작가는 "어린 시절 6·25를 겪으면서 '죽음'을 목격했다. 그때부터 사람이 죽으면 그 '넋'이 어디로 가는 걸까 끊임없이 생각했다. 지난 1월 아내를 병으로 잃고 나자 그 의문이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넋'의 궤적을 되짚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모두 30여점이 나왔다. (02)743-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