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체력을 키우자] 대기업 납품만으론 성장 한계… 수출 확대가 답

경기도 안산시 사동 한편의 빨간 벽돌 건물에 자리 잡은 부전전자. 스마트폰용 스피커가 주력 제품인 이 회사는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스마트폰 물량의 30%에 스피커를 납품하는 초우량 부품 기업이다. 스피커는 얇게 만들기가 어려워 스마트폰 두께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부품이다. 삼성이 애플 아이패드보다 얇은 '갤럭시탭 10.1'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회사가 지난 2010년 기존 모델보다 두께를 30%나 줄여 개발한 초박형 스피커 덕분이었다.

이석순(55) 사장이 1988년 세탁기용 버저를 만드는 회사를 차릴 때만 해도 삼성전자나 금성사(현 LG전자) 납품은 꿈도 꾸지 못했다. 대기업 납품 업체 등록에 필요한 생산설비를 갖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사장은 "먹고살기 위해 해외시장 공략을 택했다"며 "해외 업체들이 한국까지 실사(實査)를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부품 샘플을 들고 당시 세계 최고의 전자·통신기업이던 유럽 지멘스·에릭슨·알카텔 등을 돌며 부품 조달 담당자를 만났다. 한국 부품 업체 사람을 처음 본 담당자들은 '호기심 반'으로 만나줬고, '동정심 반'으로 주문을 줬다. 첫 주문을 받은 이 사장은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납기를 지킨다는 것, 그리고 주문이 있든 없든 석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찾아가 '우리 제품 써보니 어떻더냐'고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몇 번 갈아타고 유럽에 도착하면 기차에서 먹고 자며 스웨덴에서 스페인까지 돌았다. 이 사장이 스위스 시계처럼 납기를 지키고, 꼬박꼬박 찾아오자 엔지니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너희 부품을 써보니 어디 어디가 문제더라. 우리가 잘라서 분석해 봤더니 여기를 고치는 게 좋겠다"며 분석을 해줬다.

부전전자의 연구 개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해외 고객들이 준 숙제를 풀어 석달 만에 답을 갖고 가기 위해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밤샘을 밥 먹듯 했다. 믿음이 더 커진 고객사 엔지니어들은 나중에는 "요즘 세계 IT제품 흐름이 어떠어떠하니 너희는 이런 걸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컨설팅해줄 정도가 됐다.

1998년부터는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수출이 늘어나며 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IMF 외환위기 때도 수출이 주력이던 부전전자는 오히려 이득을 봤다. 환율이 치솟자 수출 대금이 늘어난 데다,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한 유럽의 거래 업체들이 좋은 조건으로 납품 대금을 챙겨준 것. 은행 빚도 그때 다 갚았다. 현재는 매출의 8.5%를 연구 개발에 투자한다. 한국 본사 직원 440명 중 R&D 인력이 150명이나 된다.

가톨릭대 경영학과 김기찬 교수는 "부전전자 사례는 한국 부품 소재 기업들이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이 될 수 있는 길이 바로 수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몇 안 되는 국내 대기업에만 납품을 의존하는 종속적인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차원의 매출 다각화, 즉 수출 확대가 최고의 해법"이라고 말했다.

한국 부품 소재 투자기관 협의회가 1991년부터 2009년 사이 상장된 483개 부품 소재 기업 실적을 조사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상장 첫해 이 기업들의 매출 성장률은 평균 22%, 영업 이익률은 평균 11.1%였다. 그러나 1년 반도 안 돼 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영업 이익률은 1년 8개월여 만에 반 토막 난 뒤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대규모 자본을 유치한 이후 중견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오히려 주저앉고 말았던 것이다.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박철우 교수는 "상장 이후 이익 규모가 투명하게 공개되자 대기업들의 원가 인하 압력이 거세져 수익률이 추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성장을 지속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수출 비중이 50%가 넘었다. 수출형과 내수형 부품 소재 기업의 매출 격차는 2000년 1.4조에서 2009년 4.6조로 3배 이상 벌어졌다.

부품 소재 업체들이 수출형으로 변신하려면 무엇보다도 기업주들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10년간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회사가 규모가 커지면서 여기 납품하는 부품 소재 업체들은 굳이 해외에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한 투자회사 임원은 "대기업들이 흔들리면 국내에 안주해온 부품 업체들은 더 큰 피해를 본다"며 "글로벌 공략은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