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위해 바퀴벌레도 꿀꺽… 나는, 깡으로 사는 CEO

한국투자증권 유상호(52) 사장은 인터뷰 장소로 서울 서초동의 한 이탈리아 식당을 찍었다. 일반 주택을 개조한 곳인데 잘 가꿔진 넓은 정원이 눈길을 끌었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음식도 좋아 요즘 집중 공략하고 있는 곳입니다. VIP로 대접받기 위해 거의 모든 저녁 약속을 이쪽으로 몰아놨습니다."

음식점 선택 하나에도 '집념'과 '전략'이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요리 사진을 보여줬다.

"제가 (조리법을) 배운 디저트인데, 풍선 안에 산딸기즙을 넣고 얼린 뒤 풍선을 벗겨 내면 이런 공 모양의 디저트가 나옵니다. 창의력 그리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 요소라는 점에서 금융과 요리는 닮았습니다."

그는 지난여름 두 달 동안 매주 월요일 밤에 세 시간씩 요리를 배웠다. "세 시간 동안 서서 요리를 하면 몸은 힘든데 몰입을 하게 되니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2007년 그의 사장 취임 후 한투의 고객 예탁 자산은 48조원에서 70조원으로 늘었고, 2011년도 당기순익 1위, 최근 3년간 기업 상장 중개 실적 1위 기록을 세웠다.

그와 대우증권에서 함께 일했던 강창희 미래에셋 부회장은 "보통 기획력이 좋은 사람은 친화력이 떨어지고, 친화력과 영업력이 좋은 사람은 기획서가 엉망인데 유 사장은 신기하게 3박자를 모두 갖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의 승부사로서의 이미지는 1990년대 초 대우증권 런던지사 근무 시절에 만들어졌다. 당시 런던 금융가 '시티'에선 "한국 주식을 사려면 제임스한테 가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제임스'는 유 사장이 '007' 영화 주인공 제임스 본드를 따서 만든 영어 이름. 당시 한국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5%가 그의 손을 거쳐 이뤄진 날도 있었다.

◇한국 증권사 직원은 '점심 식권'

―한국 증시 하루 거래량의 5%를 혼자서 중개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가능했나.

"런던에 가보니 한국 증권사 직원들이 '런천 바우처(luncheon voucher·점심 식권)'로 불리고 있었다. 한국 직원들이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면 밥부터 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노선을 선택했다. 지금 '이 시점에 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한국 투자 경험이 일천한 영국 금융맨들은 한국의 제도와 법규를 잘 몰라 답답해하고 있었다. 마침 한국의 한 회계법인이 한국과 미국의 회계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한 영문 책자를 냈기에 그 책을 100권 구해 펀드매니저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신뢰를 쌓으니 주문이 몰리더라."

―잠깐 은행원 생활을 하고 미국 유학 후 증권맨으로 변신했는데.

"은행의 기업 문화가 너무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하게 느껴져 그만뒀다. 증권에 입문한 것은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연결 고리가 됐다. 미국 유학 시절 대우증권 뉴욕지사장이던 그를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았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한국 자본시장의 그림을 이야기했는데, 그 꿈에 동참하고 싶었다."

―사장이 되니 뭐가 달라지던가?

"사장이 되면 회사에서 나랑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할 사람이 없어지면서 외로워진다. 모든 사람이 나한테 와서 '딜(deal)'만 하려고 한다. 증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은행과 달리 CEO가 결정해야 할 일이 많다. 고민의 종류가 많아져 꿈에서조차 회사 일로 고민하게 된다."

◇"마흔 전에 자기만의 전설 만들라"

―증권맨이 되고 싶은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

"구체적인 목표와 지향점에 따라 인생을 단위로 나눠서 장기 계획을 세우라고 말한다. 내가 대우증권에 입사했을 때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30년 앞의 계획을 세웠다(결과적으로 유 사장은 입사 후 18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30년, 20년, 10년, 1년, 한 달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마흔이 되기 전에 자신만의 전설을 만들어야 한다."

―영업에서 전설을 쓰려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비즈니스를 하려면 '깡'을 키워야 한다. 나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홍콩의 중요 고객을 접대할 때 바퀴벌레 튀김까지 먹었다. 미국 사람이 한국에 사업을 하러 왔다고 하자. 한국 바이어와 김치찌개를 먹게 됐는데, 땀 뻘뻘 흘리면서 먹는 사람과 한 입 먹고 숟가락 놓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주문을 따낼까. 특히 증권맨이 되려면 갑을병정 중의 '정'으로 살겠다는 자세부터 갖춰야 한다. 증권사는 먹이사슬의 제일 끝이라 큰 소리칠 데가 하나도 없다. 젊을 때 '정'으로 사는 게 복이다. 젊을 때 뻣뻣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목이 잘 안 꺾이면 고생한다."

그의 '깡'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에피소드. 그는 국제 금융가의 큰손인 쿠웨이트 투자청의 펀드매니저를 상대로 주문 한 건 없이도 6년간 끈질기게 공을 들인 끝에 중동 국가와 주식 대량 매매를 성사시킨 최초의 주식 브로커가 됐다. 유 사장은 술도 독하게 먹는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 가장 늦게까지 남는 사람이 그다.

―'행복한 회사'를 경영 모토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나(유 사장의 경영 철학은 '출근할 때 마음이 설레고 퇴근할 때 마음이 가벼운 회사가 정말 좋은 회사'라는 것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인간 사이의 분쟁 대부분은 내가 상대방 입장에서 헤아리면 풀릴 수 있다. 평직원 시절엔 사장 입장에서, 임원이 된 후엔 평직원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가 풀린다. 좋은 점을 칭찬해주면 신나게 일을 한다. 대우증권 런던지점, 메리츠증권 등 내가 가는 곳마다 성과가 좋았다. 생각해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나였다."

하지만 이런 유 사장도 늘 성공 신화만 쓴 건 아니다. 2007년 베트남 주식 투자 펀드에 800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참담한 수익률(10월 23일 현재까지 누적 -40%)을 냈다. 한 증권 전문가는 "한투 베트남 펀드의 투자금이 베트남 증시 시가총액의 8%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면서 "자기 판단을 과신한 나머지 시장 규모에 걸맞지 않게 과도하게 베팅했다"고 지적했다.

어젠 증권가의 제임스 본드 이젠 요리사가 되고 싶은… 유상호는 누구인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1985년 한일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 반 만에 대우증권으로 옮겼고, 1992년부터 7년 동안 런던 현지법인에서 일했다. 메리츠증권 상무를 거쳐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일하던 중 2005년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한 회사가 됐고, 2007년에 한국투자증권 사장이 됐다. 경북 안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