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헤비메탈을 위한 변명

지난 주말 '카니발 콥스(Cannibal Corpse)'라는 미국 밴드의 첫 단독 공연이 서울에서 열린 것을 두고 대중음악계에서 "만감(萬感)이 교차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음악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던 사람이 철창신세를 진 게 불과 15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악마주의 음악'을 발매했다는 이유로 음반사 직원이 구속되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밴드가 지하철에 공연 광고까지 하면서 내한 공연을 연 것이다. 그 공연에 일부러 찾아간 것은 과연 이들의 라이브가 어떤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밴드 이름부터 '식인 시체'인 이들은 '데스메탈(death metal)'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한다. 시끄럽고 빠른 음악의 대명사인 '헤비메탈(heavy metal)'의 하위 장르로, 더 빠르고 더 시끄럽고 더 극단적인 가사를 담은 음악이다. 게다가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이미지까지 겹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 번 보고 나면 24시간 동안 귀가 먹먹하다"고 하는 이 밴드의 공연은 정말 지독하게 강렬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가사로 유명한 밴드이지만, 정작 가사는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른바 '그라울링(growling·으르렁거리기)'이란 창법을 쓰기 때문인데, 목청에 잔뜩 힘을 넣어 기괴한 소리를 낸다. 그러니 모든 가사가 그저 "웍웍~궈궉궉~갸갹갹"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날 관객은 300명쯤이었다. 95%가 남자인 관객 중 일부는 빠른 드럼과 기타 연주에 맞춰 '슬래밍(slamming)'을 했다. 슬래밍이란 헤비메탈 공연을 보며 관객끼리 몸을 부딪치거나 밀어내며 빙빙 도는 걸 말한다. 그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 보면 난투극을 벌이며 강강술래를 하는 것 같다. 이 '거친 놀이'에도 제법 규칙 같은 게 있어서, 다치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은 없다. 이 밴드는 왜 이런 음악을 하며, 관객들은 왜 이렇게 노는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이 밴드는 예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좀 더 센 음악, 영화로 치면 좀비가 등장하고 유혈이 낭자한 공포 영화 같은 음악을 할 뿐"이라며 "악마주의는 우리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덮어씌우는 올가미"라고 말했다. 이들의 내한 일정을 관리했던 공연 관계자는 "그저 그런 음악을 직업으로 연주하는 생활인들이더라"고 말했다. 이 밴드가 음반과 공연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 이들의 평소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다섯 명의 '식인 시체' 가운데 드러머는 우유와 달걀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이 사람은 서울에 머무는 동안 강남역 근처 채식 전문 식당에서 보리밥과 두부로만 다섯 끼를 먹었다. 공연 전엔 각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공연이 끝난 뒤엔 호텔방에 모여 와인을 한 잔씩 마시더니 "내일 중국 공연이 있으니 일찍 자자"며 흩어지더란다.

1997년 국내 음반사 직원이 구속된 이유는 이들의 노래 가사를 바꿔치기해서 심의를 통과한 것이 들통 났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폭력적인 가사 대신 이를테면 "바람이 살랑살랑 부네/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 같은 가사를 넣어 심의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라도 폭력을 선동하고 전파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려 했던 것일까. 미문(美文)의 소설가 김연수가 "한때 데스메탈을 들으며 문학적 자양분을 얻었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런 변방의 음악이 폭력으로 직결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헤비메탈을 두고 악마주의를 논하는 일은 이 음악의 고향인 미국에서도 간간이 벌어진다. 특히 총기 난사 같은 대형 사건의 범인이 헤비메탈 팬이라면 어김없이 "그런 음악이 범죄를 부추겼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된 논리다. 음악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흉악범의 집에서 모차르트 전집이나 사이먼과 가펑클의 음반이 발견돼도 똑같은 주장이 나와야 할 것이다.

배우 최민식이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지독한 악역(惡役)을 연기했다고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시체가 사람을 잡아먹는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욕을 먹지도 않는다. 다만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는 창작물에 적절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국가의 기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음악에만 오랫동안 권위주의의 잣대를 적용해 왔다. 수많은 노래가 '금지곡'이라는 족쇄에 묶였다가 권위주의 시대가 끝나면서 풀려났다.

어떤 음악은 분명히 극소수가 좋아할 뿐이지만, 그 자체로 용인돼야 한다. '이러저러한 음악은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는 판단은 성인 개개인 몫이지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니발 콥스의 90분짜리 공연을 본 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가 다양한 문화에 면역(免疫)돼 가는 현장을 목격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