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의 히어로 & 히로인] [33] 어깨가 무거워질 때, 소년은 남자가 된다

소년은 언제 남자가 되는가. 어깨에 얹힌 것이 날개가 아니라 돌덩이임을 깨달으면서부터가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 일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아동 유기(遺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엄마는 정말 우리를 버린 건가요?' 영화의 내용은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지만 그 한 문장 너머에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상상하기조차 싫은 길고 아픈 시간들이 담겨 있다.

자주 술에 취해 들어오긴 해도 낙천적이고 명랑한 엄마 밑에 올망졸망 네 아이가 모여 산다. 각자 아버지가 다르고, 형제가 많다는 사실을 집주인에게 들킬까 봐 숨어 사는 듯하는 처지지만 남부럽잖게 우애 좋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문 앞에는 점점 세금고지서가 쌓이고 곧 물과 전기가 끊긴다. 생활비도 다 떨어져 간다. 꾀죄죄한 얼굴로 천진한 눈망울을 깜빡이는 어린 동생들은 이제 오롯이 맏이인 아키라(야기라 유야)의 책임이 되었다. 그 애는 고작 열두 살, 변변한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할 수 없는 작은 소년일 뿐이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을 얻어와 배고픈 동생들 입에 넣어주는 것, 엄마의 글씨체를 흉내 내어 동생들 하나하나의 이름이 적힌 세뱃돈 봉투를 만드는 것, 이처럼 묵묵하게 버티는 것이 소년의 방식이다. 절실하게 지켜야 할 게 있는 사람은 결코 무너질 수 없는 법이다. 동생들을 굶겨 죽이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그를 지배한다. 동생들에게 먹일 무거운 물을 짊어지고 기나긴 계단을 꾸역꾸역 기어올라 집에 돌아가는 아키라의 모습은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어린 사제(司祭)처럼 보인다.

막냇동생의 시신을 여행용 트렁크에 넣어 공항철도를 타는 장면은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아프다. 왜 하필 공항 옆에 묻었는지, 짧은 생애 동안 집 안에 갇힌 듯 살았던 어린 동생에게 주는 오빠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짐작할 뿐 아키라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힘들게 견디고 있는 소년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