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場은 늘 새 챔피언을 갈망… 성공의 추억은 잊어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개막됐다. 야구 팬들은 각본 없는 멋진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운 한 주를 보낼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사상 최초로 관중 7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LG, 넥센 등의 예상을 뒤엎은 선전(善戰)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 이후 삼성이 선두 독주 체제를 갖추고, 초반에 활약했던 팀들이 4강에서 멀어지자 관중 수가 주춤해졌다. 반전이 없는 드라마는 식상한다. 지고 있던 팀의 역전 드라마, 꼴찌의 반란이야말로 게임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고객은 늘 새로운 승자를 기다린다

많은 야구 팬들은 프로야구가 없던 1972년 고교야구 황금사자기 결승전의 9회 말 승부를 잊지 못한다. 팀 창단 4년차의 신예 군산상고가 결승에 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변이었고 뉴스였다. 더구나 8회까지 야구 명문 부산고에 1 대 4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군산상고는 9회 말 대역전극을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새로운 승자'에 대한 기대와 열광은, 비단 스포츠에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삼성전자 미국법인에 근무하던 시절, 소니는 쉽게 넘볼 수 없는 절대강자였다. 그런데 그때 삼성을 성원하던 거래처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꼭 소니처럼 물건을 잘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소니의 80% 정도만 만들어도 우리가 밀어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오랫동안 최고여서 그런지, 그 회사(소니) 요즘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아요. 소비자들이 자기 제품들을 찾아다니니까, 유통은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회사가 그렇다기보다 혹시 담당하는 임직원 개인들의 문제는 아닐까요? 모두가 서로 거래하려는 회사에 있다 보면 개인에 따라서는 자신감이 지나치거나 좀 우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마저 회사의 문제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승자의 자만이 조직에 팽배합니다.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장은 항상 새로운 승자를 기대한다(Markets always expect new champion)'는 것입니다."

그렇다. 고객은 늘 새로운 제품, 새로운 기술,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승자를 기다린다. 하물며 기존의 승자가 고객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고객을 볼모로 잡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성공의 추억과 자만이 승자의 적

늘 새로운 승자를 요구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항상 시장의 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고 혁신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고 또 다른 새로운 승자에게 자리를 내줄 빌미를 줄 수 있다. 지금껏 자신들이 시장을 주도해왔으니, 어떻게 하든 앞으로도 자신들 생각대로 시장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 뜻하지 않은 실수를 부른다. 노키아(Nokia)는 자신들이 먼저 스마트폰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휴대폰 성공에 도취해 제때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다.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중차대한 시점에 기존 브라운관 TV의 대성공에 대한 자만이 평면 TV로의 과감한 이행에 발목을 잡았다.

달콤한 성공의 추억은 '제품의 가치는 고객이 매기고 시장의 흐름도 결국 고객들이 만든다'는 진리를 잊게 하고, '자신들이 천천히 움직이면 시장도 따라서 속도를 줄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기존의 성과에 힘입어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가 커질수록 그동안 파트너로 소중히 여겼던 유통 채널을 경시하게 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소비자의 충성도를 담보로 유통 채널의 옳은 소리도 부당한 요구로 받아들이게 되면 유통 파트너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시장에선 새로운 승자를 찾는 정서가 싹튼다. 결국 소비자와의 관계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계속 사랑받기 힘든 승자

필자에게 '시장은 항상 새로운 승자를 기대한다'며 성원해 주던 10년 전의 미국 거래처를 얼마 전 다시 만나게 됐다. 그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처럼 기업들의 실수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10년 전에 시장의 성원에 힘입어 1등이 된 기업이 자신들이 밀어낸 그전의 1등 기업보다 더 큰 자만심을 보일 때 더욱 안타깝다고도 했다.

한 회사의 부침은 한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승자란 모든 면에서 웬만큼 잘하지 않고는 계속 사랑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은 항상 새로운 승자를 기대한다'는 말은 현재의 승자에겐 안주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리고 아직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많은 도전자들에겐 희망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벌써 1등이라면 초심을 잃지 말고 더욱 겸허해지자. 아직 1등이 아니라면 시장의 기대와 성원을 믿으며 더욱 분발하자. 고지는 철옹성도 아니고 생각보다 멀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