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시장에서 배운다] 만담공연장·1만보 걷기… 시장을 즐거운 곳으로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시내에서 북쪽으로 20여분 차를 달리면 나타나는 덴진바시스지(天神橋筋). 남북 길이가 2.6㎞에 달하는 일본 최대 전통시장이다. 시장을 전부 둘러보려면 1만보(步) 이상 떼야 한다.

매년 7월엔 시장 일대에서 일본 3대 축제로 불리는 '덴진마쓰리'가 열려 전국 각지에서 관람객과 쇼핑 인파가 몰려와 호황을 누린다.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신바람 나는 이벤트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미래 고객인 젊은이들과 소통을 강화해 온 결과다.

◇신바람 나는 시장으로 고객을 끌다

19일 오전 9시부터 덴진바시스지는 다양한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자전거 앞바구니에 장아찌조림 등 반찬팩을 담고 지나가는 아주머니, 등에 기타를 짊어지고 헌책방 앞에서 책을 읽는 대학생…. 시장 부근에 편의점 '로손(Lawson)'과 대형 수퍼마켓이 있는데도 채소가게와 반찬가게에는 손님들이 꾸준히 들락거렸다.

하루에 4000개 이상 팔린다는 명물 크로켓(일본명 고로케) 노점상 앞엔 아침부터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하나에 70엔(910원)짜리 갓 튀긴 고로케를 사기 위해서다.

덴진바시스지도 2000년대 중반 큰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주변에 편의점·대형수퍼 등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며 시장에 빈 점포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오모야 도시히로(重矢錐宏) 상점진흥조합 부이사장은 "손님이 계속 찾아오게 하기 위해선 '뭔가 극적인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활의 원동력은 2006년 시장 안에 만들어진 라쿠고(落語·일본 전통만담) 상설공연장 '덴마덴진 한조테(天滿天神 繁昌亭)'였다.

"만담(漫談)이 흘러넘치는 유쾌한 곳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꼭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시장을 찾는 고객이 끊기질 않는 것이죠."

건설비 2억3000만엔(약 30억원)은 상인들과 주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총 216석 규모인 이곳에선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왁자지껄한 공연이 열린다. 공연장이 들어선 후 시장 방문객은 평일 20~30%, 주말은 40%가량 증가했다. 오사카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공연장 건설로 인한 경제 효과는 연간 115억엔(약 1500억원)에 달한다.

◇미래 고객 '젊은이'를 공략하라

전통만 붙잡고 늘어진 것이 아니다. 미래 고객인 젊은이와 소통도 강화했다. 시장 한복판엔 출입문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공간이 있다. 26㎡(8평) 넓이의 실내에선 한 대학생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고, 그 옆으론 경영학 서적과 잡지책이 놓여있었다.

이곳은 인근 간사이(關西)대학생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스터디룸이다. 상점진흥조합이 대학과 협의를 맺고 학생들에게 빌려준 곳이다. 소정의 임대료는 대학이 상점진흥조합에 지불한다. 한 과일가게 주인은 "대학 축제 때 상인들이 구경 가기도 하고, 학생들이 시장 트렌드에 관한 보고서도 구해다주면서 친밀하게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엄마들이 시장을 찾아오도록 어린이 대상 종이인형극을 기획하고, 오사카 사투리 체험 등 지역적 특성을 내세운 다양한 관광상품도 개발했다. 오모야 상점진흥조합 부이사장은 "전통시장은 편의점이나 마트와 달리 나름대로 차별성과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시장 상인들은 모두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쳐있어요. 가게에서 취급하는 상품에 관해선 어떤 질문을 받아도 다 대답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각종 물건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파는 대형 유통업체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고객들이 먼저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