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0.25 23:34

'마이크로 텃밭'이 뜬다
주말농장 등 야외에서 가꾸던 텃밭 깡통·주머니 등에 만들어 실내 설치
인테리어·디자인 소품으로 진화 "도시화 속, 자연 향한 갈망 커진 탓"

지금 서울의 두 가지 풍경 중 하나. 구(舊)서울역사를 개조한 문화역서울284의 '인생사용법' 전시에는 작은 텃밭 하나가 놓여 있다. 배추·바질 등 여러 가지 작물이 자라고 있는 텃밭의 이름은 '마주보다'. 디자이너 정순구씨가 목재 팔레트(운반용 하대) 안에 방습포를 깔아 만들었다. 공사장에 널려 있는 팔레트를 주워 만들었고, 실내·옥상 등에서 옮기기 쉽게 바퀴를 달았다고 한다. 정씨는 "건조한 공간 속 자연을 통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광화문광장에는 텃밭의 산물(産物)이 펼쳐져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회째 열리고 있는 텃밭 농산물 행사 '서울 농부의 장터'. '디자인 농사'를 콘셉트로 앞세운 한 유기농 업체와 서울시가 공동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선 흙·씨앗·비료 등 가정용 텃밭용품을 살 수 있다. 행사 관계자는 "실내에 작은 텃밭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며 "문의가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계란 껍데기를 활용해 만든 텃밭. '아이디어 텃밭전'에 출품된 작품. 전기 밥솥에 식물을 심은 한송이의 '업사이클링 가든'. 공사장 팔레트를 재조립해 텃밭을 꾸민 임종기의 '칵테일 가든'. 청바지를 잘라 붙이고 주머니에 식물을 키우는 조혜영의 '그린 진'. /종로구청,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주말농장과 도시텃밭 등 야외에서나 가능했던 텃밭 가꾸기가 디자인을 만나 진화하고 있다. 최근 인테리어·디자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실내 미니 텃밭, 이른바 '마이크로(micro·매우 작은) 텃밭'이다. '마이크로 텃밭'이란 텃밭을 실내로 끌어들이되 디자인 면에서 완성도 높고 공간 활용 면에서 효율적인 아주 작은 텃밭을 말하는 것. 비좁은 실내에도 설치할 수 있는 데다 그 자체로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채소 소믈리에 박희란씨는 "2~3년 전 일부 가정에 국한됐던 베란다 텃밭에 대한 관심이 지금은 (체감도가) 수십 배 이상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작물을 키워 먹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 아름답게 키울 수 있을까에 특히 관심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흙을 채운 고무장갑을 화분처럼 활용한 한송이의 '업사이클링 가든'.
마이크로 텃밭을 주제로 한 디자이너 작품도 지난 1년 새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화훼 디자이너 한송이씨가 최근 선보인 '업사이클링 가든'은 못 쓰는 고무장갑에 옷걸이 철사를 끼워넣어 화분으로 삼거나 안 쓰는 전기밥솥이나 냄비에 흙을 채워넣고 작물을 키우는 것. 올 초 한 전시에서 선보인 디자이너 이임경씨의 '스툴'은 벽면에 부착하는 높이 50㎝짜리 텃밭용 화분 겸 의자다. 3단짜리 스툴 바닥에는 물이 빠지도록 촘촘한 배수 구멍이 나 있다.

가든 디자이너 서수현씨는 지난해 한 전시에서 좁은 실내 공간을 활용한 전형적인 마이크로 텃밭 '버티칼 가든'을 선보였다. 값싼 부직포에 철사 와이어를 끼워넣어 벽에 건 뒤 주머니처럼 작물을 담은 것이다. 조혜영씨가 선보인 '그린 진'은 낡은 청바지를 해체해 작물을 심은 작품이고, '아이 캔'은 버려진 깡통을 텃밭 용기로 활용한 것이다.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펼쳐진 '아이디어 텃밭전'에서는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이 계란 껍데기나 전구를 활용해 만든 마이크로 텃밭 작품이 등장해 "재기 발랄한 실험"이라는 평을 들었다.

디자이너 한송이씨는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자연을 더 갈망하게 된다"며 "자연에 대한 공감대를 가진 디자이너들과 일반의 관심이 앞으로 계속 커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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