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다양화 벌떼 전략… 애플, 단일 사이즈에서 변심

전 세계 소비자들이 원하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크기를 가늠해오던 양대 글로벌 메이커 삼성전자와 애플이 점차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은 5인치 전후로 점점 커지고, 태블릿PC는 7인치대로 작아지는 추세로 가고 있는 것.

삼성전자와 애플의 전략은 처음부터 달랐다. 삼성이 "시장을 반영하겠다"는 전략이었다면, 애플은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애플의 경우 스마트폰은 손바닥 절반만 한 3.5인치, 태블릿PC는 노트만 한 9.7인치라는 크기를 고수해왔다. 후발주자 삼성의 모토는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크기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삼성은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화면 크기를 4인치에서 4.3, 4.8인치로 계속 키워왔다. 5인치대 스마트폰 갤럭시노트도 5.3인치에서 5.5인치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태블릿PC '갤럭시탭' 시리즈는 초기 7인치에서 10.1, 8.9, 7.7인치 제품을 내놓는 다원화 전략을 펴고 있다.

삼성전자의 '벌떼 전략'은 콧대 높은 애플을 돌아서게 했다. 애플이 올 들어 화면 크기를 4인치로 키운 '아이폰5'와 태블릿PC 화면을 7인치대로 줄인'아이패드 미니'를 내놓고야 만 것이다. 애플의 이 같은 변화는 단일 크기를 '신념'처럼 고수해왔던 공동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기존 철학과 배치되는 것이다. 잡스는 평소 7인치대의 태블릿PC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여왔다. 그는 "7인치 태블릿PC는 도착 즉시 사망(DOA·Dead on Arrival)할 것" "7인치 크기의 제품을 쓰려면 사용자의 손가락을 사포로 갈아야 할 것"등의 독설(毒舌)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패드는 세계 태블릿PC 시장에서 70%가량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독주해왔다. 하지만 아마존과 구글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7인치대 태블릿PC로 시장을 잠식해오자 애플도 마침내 뜻을 꺾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잡스의 사망이 오히려 애플을 유연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아이패드 미니 발표장에서 "아이패드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이 1억대를 넘어섰다"면서 "아이패드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이 전체 태블릿PC 시장의 91%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는 바꿔 말하면 9.7인치 태블릿PC 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패드·아이패드2·뉴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애플의 '9.7인치 태블릿PC'를 구매하지 않은 고객은 사실상 다른 니즈(needs)를 가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패드 미니는 그간 크기와 가격 부담 때문에 아이패드 구매를 망설였던 소비자들을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태블릿PC의 강자' 애플의 변심(變心)은 시장 파이를 키우는 효과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이패드 미니가 답보 상태였던 7인치 태블릿PC 시장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동시에 PC시장엔 또 한 번의 타격을 안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9인치대의 아이패드로 PC시장을 한 번 위축시킨 애플이 7인치대 아이패드로 다시 한 번 PC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측이다.

삼성과 애플이 다양한 인치, 다양한 크기의 제품을 내놓는 것은 기기 판매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전략만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콘텐츠를 판매할 창구를 어떻게든 많이 깔아두겠다는 전략이다.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많이 팔릴수록 구글은 '구글 플레이'를 통한 콘텐츠 판매 수수료 수익이 높아진다. '앱스토어'에서 팔리는 콘텐츠 판매대금의 30%씩을 수수료로 받고있는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애플이 맥(PC)과 아이폰(스마트폰), 아이패드(태블릿PC)를 모두 하나로 묶는 'N스크린'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이런 의도를 품고 있다.

전 세계에서 엄청난 양의 기기를 팔고 있는 삼성이 자체 운영체제인 '바다'와 콘텐츠 장터 '삼성앱스'의 확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