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역설… 대기업 내쫓은 시장, 외국계 어부지리

"대기업을 막았더니 외국계가 걱정이네…."

기획재정부가 내년 2월까지 새 사업자를 정해야 하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민단체와 중소기업계에서 "면세점 사업을 재벌 그룹들이 독점해 해외 명품업체 제품만 판다"는 비판이 높아지자 정부가 입찰에 대기업 참여를 배제한다는 입장을 정했는데, 그 빈자리를 외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0월 말까지 인천공항공사를 통해 면세점 입찰공고를 내도록 할 계획이었지만, 신중을 기하자는 차원에서 일정을 11월 이후로 미뤘다"고 했다.

◇면세점 입찰, 외국계 독차지 될라

인천공항 면세점은 현재 신라면세점·롯데면세점·한국관광공사가 운영권을 나눠 가지고 있다. 이들 세 회사는 2008년 3월부터 영업 중인데, 신라와 롯데는 2015년 2월까지 면세점을 운영할 권리가 있고, 관광공사의 점포 운영권은 내년 2월이면 만료된다.

정부와 인천공항공사는 내년 2월까지 관광공사 소유의 면세점 사업자를 새로 정해야 하는데, 입찰에 대기업을 배제하기로 했다. 유력한 방안은 자산 규모 5조원이 넘는 대기업 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입찰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넣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방침이 정해지자 재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형 외국계 기업이 치고 들어올 경우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계 1위 면세점 업체인 DFS갤러리아 등 외국계도 입찰에 관심이 많은데, 이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다간 불공정행위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기업 입찰을 제한한 취지는 중견·중소기업이 면세점 사업에 진출해 우수한 국내 제품을 알리고 브랜드 가치도 높여주자는 것인데, 엉뚱하게 외국 기업만 좋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입찰에 현실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인천공항에 운영하는 면세점은 2531㎡ 규모로 인천공항 전체 면세점 면적의 16%에 이르고, 작년 매출은 1920억원이었다.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DFS갤러리아의 연 매출 규모는 6조~7조원에 달해 3조원 수준인 롯데면세점의 2배가 넘는다"며 "늑대를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계가 입점하면 납품업체들이 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가격 인하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DFS갤러리아는 7년간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했는데 2008년 입찰에서 떨어져 한국에서 철수했다.

◇"일방적인 진입 규제 부작용 우려"

정부가 특정 업종에 대기업 진입을 막자 그 자리를 외국계가 잠식하는 현상은 다른 업계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표 참조〉. 공공기관 급식, 조달청이 발주하는 소모성 행정용품(MRO) 사업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벌의 승자 독식 문제를 진입 규제로만 풀려고 할 경우 중소기업 육성도 못하고 시장은 외국 기업에 내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국내 시장이 거의 모두 개방된 상황에서 대기업 진출만 막는다고 그 몫이 중소·중견기업에 가지는 않는다"며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대기업 진출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운용하다 폐지한 전례가 있는데 이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명기구를 예로 들면 1980년대 초부터 중소기업 업종으로 지정돼 중소기업만 제품을 만들었지만 현재 국내 시장의 60~70%를 GE·오스람·필립스 등 외국계가 잠식해 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