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삶의 의미를 찾아… 우리는 체호프가 만든 안갯속을 헤맨다
입력 : 2012.10.29 03:03
스물아홉 번째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명사 101명 추천 도서 목록은 chosun.com
배우 길해연이 읽은 '세 자매'
읽을수록 깊어지는 모호한 매력 늘 새롭게 만나는 '나만의 체호프'
작품 속에 동정도 비난도 없듯 현실의 불행도 그저 견뎌낼 뿐… 시간이 흘러야 의미 알 수 있어
만날수록 양파 껍질 벗듯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읽을 때마다 낯설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풍기는 작품이 있다.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특별한 주제도 플롯도 주인공도 없고, 대사 사이사이, 말 사이사이의 정지와 침묵이 60번이나 되는 희곡이 재미있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울 텐데 희한하게도 이 작품, 손에 잡으면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4막으로 구성된 이 희곡은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함의 깊이가 더해만 간다. 등장인물들은 독백인지 대화인지 구분이 애매한 말들을 말줄임표를 끝없이 섞어가며 늘어놓는다.
거기다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반전도 없고, 심장이 벌렁거릴 만한 큰 사건도 무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희곡 속에서 그나마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이리나를 사이에 둔 투젠바흐와 숄로느이의 결투다. 그런데 그 결투도 그리고 그 결투 끝에 벌어진 투젠바흐의 죽음도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특별한 주제도 플롯도 주인공도 없고, 대사 사이사이, 말 사이사이의 정지와 침묵이 60번이나 되는 희곡이 재미있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울 텐데 희한하게도 이 작품, 손에 잡으면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4막으로 구성된 이 희곡은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함의 깊이가 더해만 간다. 등장인물들은 독백인지 대화인지 구분이 애매한 말들을 말줄임표를 끝없이 섞어가며 늘어놓는다.
거기다 "아하!" 하고 무릎을 칠 만한 반전도 없고, 심장이 벌렁거릴 만한 큰 사건도 무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희곡 속에서 그나마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이리나를 사이에 둔 투젠바흐와 숄로느이의 결투다. 그런데 그 결투도 그리고 그 결투 끝에 벌어진 투젠바흐의 죽음도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벌어지지 않는다.
"조금 전 남작이 결투에서 사망했어요"라는 체부트이킨의 말에 이리나는 그저 흐느끼며 "그래, 난 알았어. 난 알았어"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 체부트이킨은 한숨을 쉬고 신문을 꺼내 읽으며 "타툼타툼…" 노래를 부른다.
체호프는 등장인물들을 동정도 비난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무대 위에 버려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버려둔다"라고. 체호프가 등장인물들을 미화하거나 꾸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처절하게 불행하다고 느낄 만한 한 방을 맞았을 때 나 또한 그들처럼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한숨 섞인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무슨 일인가 벌어졌을 때 그 당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저 반응하고 견디고 그리고 지나고 보니 그런 일들은 내 인생에 하나의 커다란 경험이 되어 있고 여전히 시간은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체호프는 등장인물들을 동정도 비난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무대 위에 버려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버려둔다"라고. 체호프가 등장인물들을 미화하거나 꾸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처절하게 불행하다고 느낄 만한 한 방을 맞았을 때 나 또한 그들처럼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한숨 섞인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무슨 일인가 벌어졌을 때 그 당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저 반응하고 견디고 그리고 지나고 보니 그런 일들은 내 인생에 하나의 커다란 경험이 되어 있고 여전히 시간은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네, 잊혀지겠죠. 그게 바로 우리의 운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거나 하찮은 것이 되버립니다…그런데 재미있는 건 무엇이 정말로 고상하고 중요하며 무엇이 초라하고 우스운 것이 되는지 우리는 지금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희미해진다며 "우리도 잊혀지겠죠. 잊혀질 거예요"라고 하는 마샤에게 베르쉬닌이 하는 말이다. 등장인물 모두 평범하고 특별할 거 없는 사람들인데 대사마다 가슴에 작은 파장이 인다.
그래서 여전히 이 희곡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작가 자신은 작품에 대한 비극적 해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게 재미있다. 오죽하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배우들이 대본을 함께 읽었을 때 모두 비극으로 해석하고 눈물을 흘리자 체호프는 자신의 희곡을 이해 못 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불행하게도(?) 체호프 작품에 한 번도 출연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여우의 신포도'라 비난하겠지만, '세 자매'는 공연을 봤을 때보다 희곡으로 읽었을 때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공연이 잘못되었단 소리가 아니다.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은 모호함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만났을 때 나의 상상력이 더 증폭되어서 였을 것이다.
러시아 연출가 에프로스가 그랬다지 않은가. "저마다 자신만의 체호프가 있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어느 극장에선가 '세 자매' 공연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또 기대감에 부풀어 그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그들의 '세 자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몹시도 궁금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책을 펴들었을 때 '세 자매'가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올지 가슴이 설렌다.
미래의 내 모습이 조금은 불안하고 두렵지만 나는 서로에게 기대어 선 세 자매처럼 되뇌어본다.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야 해! 음악이 저렇게 기쁘게 연주되는 걸 들으니, 조금만 있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 알게 될 것 같아…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140자 트윗독후감
"고향인 모스크바를 그리워하는 세 자매 올가, 미샤, 이리나. 현실의 무게 앞에 흔들리는 그녀들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모두에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물러서야 할 것인가, 희망을 붙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딪쳐야 할 것인가. 결국 나만의 몫이다."(페이스북 응모자 황수현)
Lee Young Hee, Hyun Jung Lee, 트윗 응모자 kidcar215, modelomg등 다섯 분께는 개별 통지해 선물을 드립니다. 101명 무료 동영상 강의는 휴넷(www.hunet.co.kr)에서 안내합니다.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희미해진다며 "우리도 잊혀지겠죠. 잊혀질 거예요"라고 하는 마샤에게 베르쉬닌이 하는 말이다. 등장인물 모두 평범하고 특별할 거 없는 사람들인데 대사마다 가슴에 작은 파장이 인다.
그래서 여전히 이 희곡을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작가 자신은 작품에 대한 비극적 해석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게 재미있다. 오죽하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배우들이 대본을 함께 읽었을 때 모두 비극으로 해석하고 눈물을 흘리자 체호프는 자신의 희곡을 이해 못 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불행하게도(?) 체호프 작품에 한 번도 출연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소릴 하면 '여우의 신포도'라 비난하겠지만, '세 자매'는 공연을 봤을 때보다 희곡으로 읽었을 때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공연이 잘못되었단 소리가 아니다.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은 모호함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만났을 때 나의 상상력이 더 증폭되어서 였을 것이다.
러시아 연출가 에프로스가 그랬다지 않은가. "저마다 자신만의 체호프가 있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어느 극장에선가 '세 자매' 공연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또 기대감에 부풀어 그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그들의 '세 자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몹시도 궁금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책을 펴들었을 때 '세 자매'가 어떤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올지 가슴이 설렌다.
미래의 내 모습이 조금은 불안하고 두렵지만 나는 서로에게 기대어 선 세 자매처럼 되뇌어본다.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아야 해! 음악이 저렇게 기쁘게 연주되는 걸 들으니, 조금만 있으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왜 고통을 당하는지 알게 될 것 같아…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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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모스크바를 그리워하는 세 자매 올가, 미샤, 이리나. 현실의 무게 앞에 흔들리는 그녀들은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모두에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물러서야 할 것인가, 희망을 붙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부딪쳐야 할 것인가. 결국 나만의 몫이다."(페이스북 응모자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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