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토끼 잡는 利差 보전 묘수인가, 꼼수인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난 9월 26일 내년 예산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박재완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말이다.

이때 두 마리 토끼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과 '균형 재정(수입과 지출이 같아 적자가 없는 상태)'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내년 예산안을 보면 정부 재정수지가 0.3%의 적자에 그쳐 사실상의 균형 재정을 달성하는 걸로 돼 있다. 그러면서도 내년 실질적인 재정 지출은 당초 계획했던 5.1%보다 많은 7.3%를 늘리겠다고 했다. '돈은 많이 쓰면서 가계부는 흑자로 만들겠다니 가능한 건가?'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묘수라며 정부가 내놓은 것이 바로 '이차 보전(利差補塡)'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에 대해 "정부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민간에 전가하는 숫자 놀음이며 변칙 회계"라는 비판도 나왔다.(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

경제 전문가들에게도 생소한 이차 보전이란 대체 무엇이고, 정부는 왜 이 사업을 들고 나왔을까? 그 뒤엔 어떤 사정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민간 자금을 정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이차 보전의 핵심

이차 보전이란 문자 그대로 이자 차이(이차·利差)를 보전해 주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맡아서 하던 저리 융자(대출) 사업을 은행에 위탁해 대신하게 하되, 은행이 시중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손실만큼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부는 대출 금액 전체를 갹출할 필요 없이 시중 금리와 정책 금리의 차이만큼만 부담하면 되므로 자금 부담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이차 보전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주택기금 대출이다. 국토해양부는 무주택자가 생애 최초로 집(85㎡ 이하, 6억 이하, 투기지역 제외)을 살 때 구입자금을 우리은행, 농협중앙회,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등을 통해 빌려주는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가구당 2억원이 한도인데, 연 4.2%의 정책 금리로 1년 거치 19년 상환 또는 3년 거치 17년 상환 조건이다. 통상 연 5%대인 시중 대출 금리보다 싸다.

지금까지는 이 사업을 정부 돈으로 해왔다.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도 당연히 정부가 챙겼다. 이 사업을 대행하는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소정의 수수료만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은행들이 자기 돈으로 이 사업을 하게 된다. 금리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연 4.2%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 사업의 대출 금리가 시중 금리보다 낮기 때문에 사업을 하면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정부가 정책 금리와 시중 금리와의 이자 차이를 은행에 보전해 준다. 정부 입장에선 민간 자금을 끌어다 쓰니 정부 지출을 아낄 수 있고, 은행 입장에서도 정부가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니 서로 윈윈(win-win)인 셈이다.

내년 예산 안을 보면 '재정 융자 지출 6조7000억원을 이차 보전 방식으로 지원한다'고 돼 있는데, 이는 은행이 정부가 하던 저리 융자 사업을 대신 맡아서 6조7000억원을 대출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정책 금리가 시중 금리보다 약 2%포인트 정도 낮은 것을 감안하면, 은행은 대출해 줄 때마다 2%포인트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6조7000억원의 2%인 약 1300억원을 은행에 보전해 준다. 정부로선 당초 6조7000억원을 들여서 할 일을 1300억원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렇게 해서 생긴 자금 여유를 경기 대응, 민생 안정, 지방 지원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10년 전부터 나온 아이디어

예산안에 이차 보전 방식〈키워드 참조〉을 도입하자는 아이디어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었다. 조세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감사원, 국회, 기금평가단 등 예산에 관련한 연구기관치고 이 주제를 가지고 보고서를 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 방식은 선진국도 대부분 도입하고 있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도 재정 위기를 경험하면서 재정 융자 제도를 이차 보전 형태로 바꾸는 개혁을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도입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국민주택기금이나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 등 기금을 관할하는 주무부처와 기금 운용기관의 반발 때문이었다. 한 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이차 보전 방식 전환의 도입은 지금까지 재정 융자 사업을 담당하던 정부 부처와 기금 운용기관의 일이 없어진다는 뜻"이라며 "자기 일이 없어지는데 찬성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올해 제도 도입 과정에서도 다른 부처의 저항이 거셌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차 보전 방식은 대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자기 돈을 빌려준 은행이 손실을 입기 때문에 은행이 정부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주택 구입자금 대출처럼 담보가 확실해 은행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낮은 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이차 보전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재정 지출 늘려라" 압력 높은데 균형 재정은 해야겠고…

박재완 장관은 취임 이후 재정 건전성을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그는 특히 "2013년까지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올해 초만 해도 이는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용기'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기(景氣) 부진이 하반기에도 이어지면서 당초 정부 기대대로 '상저하고(上低下高)'가 아닌 '상저하저(上低下低)'가 되자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곤두박질치는데도 박 장관이 "내년 균형 재정을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말하자, 정치권과 일부 민간 연구기관에선 "정부가 균형 재정의 도그마에 갇히지 말고 좀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여당인 새누리당 정책위원회에서도 "하반기에 추가 경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5월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2013년 균형 재정은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추경은 안 되고, 내년 균형 재정도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로선 경기 부양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불가능했다. '묘수'가 나오지 않으면, 박 장관으로선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를 포기해야 할 처지였다.

결국 예산실과 재정정책국 간부들이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는 과정에서 실무자 중 하나가 "현재 27조원 규모인 재정 융자 사업을 이차 보전 방식으로 민간에 맡기면 정부 지출을 줄이고 그만큼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난다"는 의견을 냈다. 박 장관은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 사업을 실행키로 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장관의 약속과 정치권의 경기 부양 요구에 둘 다 맞추려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 이차 보전 사업인 셈"이라고 했다.

☞재정 융자

정부가 농민, 서민, 중소기업 등 국가 지원이 필요한 가계와 기업을 위해 자금을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는 제도.

☞이차 보전(利差補塡)

재정 융자 사업에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은행 등 금융회사로 하여금 자금을 조달해 대출을 해주게 하는 방식. 대신 정부는 금융회사가 시중 금리보다 낮은 정책 금리로 대출을 해줌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 손실을 보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