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헌법학 원로, 연구열정은 여전히 청춘

"대학에서 50년간 헌법을 가르쳤으니 제자가 부지기수지요. 하지만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제자들이 막상 정치판에 가서는 불법·탈법·편법을 일삼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41년간 강단에 섰던 서울대 법대 출신 정치 신인들이 얼마 전 추한 폭로전을 벌였을 땐 낯이 뜨거웠다고 했다. 한국 헌법학 2세대 거목인 그가 팔순을 맞아 헌법연구서인 '헌법과 정치'(진원사)에 이어 논문·시론 등을 모은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소명출판)을 냈다.

요즘은 '안철수'란 이름이 떴지만 한때 '김철수'는 고시생들 사이에 헌법학 필독서 저자로 이름 높았다. 하지만 김 교수 스스로 학문적으로는 회한이 없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유신 때 비판적 책을 썼다가 출판금지·몰수되고 한동안 해외에 있었어야 했어요. 한창때인 40대를 좌절감 속에 지냈습니다." 당시 삭제된 부분이 새 책에 복원됐다. '유신헌법의 정부형태'에 관한 항목을 보면 '신대통령제'로 부르면서 '전제정부의 일종이며 현대적 군주제도…'라고 적었다. 단점으로는 '국가권력이 일개인에게 집중 행사됨으로써 국민의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며, 군주국으로 이행될 가능성도…'라고 썼다.

후환은 지금도 생생하다. "1973년 1월 10일 책이 나오자마자 전량 몰수되고 다음 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주일간 잠도 못 자고 심문을 받았어요. 세 차례 수정 끝에 출간됐지만 강의는 금지됐지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해 유감이 없을까. 그는 "유신은 박 대통령 일이었고, 박 후보는 그때 스무 살밖에 안 됐는데 뭘 알았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어릴 적 문학 소년이었던 그가 헌법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이념 갈등이었다. "해방 후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라 할 정도로 좌익이 강했어요. 1946년 10·1 폭동 사건이 났는데 중1 때 교실에서도 좌우 대립이 극심했어요. 그 무렵 제헌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법을 통한 사회통합을 생각했지요."

그는 척박하던 한국헌법학계에 자연법 철학 이론을 본격 적용한 첫 학자였다. "1961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이듬해 서울대 법대에 임용된 후 헌법질서론을 쓰려는데 참고할 책이 없어 유학 시절 읽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당시에 쓴 '학문적 고도(孤島)'란 말은 식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됐다.

그는 요즘 대학 환경은 나아졌는데 교수들 연구열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엔 교수 월급 3000원에 연구비도 없었어요. 요즘은 연구비에 책·학술지도 거의 다 들어오지요. 평가제나 승진 심사제가 있지만 탈락 교수는 별로 없어 사실상 종신제예요. 그런데도 요즘 교수들은 공부보다는 정치나 딴 곳에 관심이 더 많이 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제자들과 함께 설립한 한국헌법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여생도 지금처럼 헌법 연구 한 길에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