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하라 아시아, 선진국 '머니 허리케인' 덮친다

'선진국에서 밀려오는 돈의 홍수를 막아라.'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 잇따라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조치) 조치를 시행한 결과 글로벌 금융시장에 풀린 돈이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환율은 떨어지고(통화 가치 강세), 홍콩 등 일부 국가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거품 조짐마저 나타나 비상이 걸렸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양적 완화 정책을 시사한 7월 2일 이후 이달 29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46.1원에서 1095.8원으로 4.4% 하락해 국제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많이 내렸다. 말레이시아 링깃이 4.1% 떨어져 뒤를 이었고 싱가포르 달러(3.6%), 중국 위안(1.7%) 등 다른 아시아권 통화도 모두 가치가 올랐다.〈그래픽 참조〉

선진국에서 풀린 돈이 밀려들면서 아시아 국가의 자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최근 4년 동안 2배로 뛰어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3분기(7~9월)싱가포르 주택 가격 평균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6% 올랐다. 또 홍콩 증시는 올 들어 29일까지 16.7% 오르고, 필리핀 증시는 23.5% 올랐다.

아시아로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은 선진국 기업이나 가계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반면 아시아 시장은 상대적으로 고수익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의 기준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인 반면 한국(2.75%), 중국(6%), 말레이시아(3%) 등 아시아 기준금리는 여전히 일정 수준의 수익을 제공하고 있다.

핫머니가 몰려오자 아시아 각국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지난 19일 3년 만에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고,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이 주택을 살 경우 구입 가격의 15%에 해당하는 취득세를 매기기로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또 외국인이나 국내외 기업들이 구매 후 3년 이내에 부동산을 팔 경우 20% 이상의 거래세를 매길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입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환율에 대해 공식 언급을 자제하던 정부는 26일 "외환시장에 일방적인 기대가 형성돼 있고 쏠림이 과도하다"는 구두 개입에 나섰고, 새누리당에선 외환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를 공약으로 채택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싱가포르, 대만, 필리핀, 태국 등 수출 비중이 높은 다른 아시아 국가도 급격한 통화 강세에 맞서 일부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이런 조치가 효과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양적 완화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에는 시큰둥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의 자본 통제와 외환시장 개입은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며 "개별적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신흥국 간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희남 기재부 국제금융협력국장은 "이번 주말 멕시코에서 개최되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선진국의 양적 완화에 따른 효과를 감시하는 장치를 만들자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단 양적 완화 효과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