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 고려불화, 청자에 버금가는 문화유산

고려청자와 함께 예술적 기량이 가장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여점밖에 없다. 국내에는 10여점뿐이고,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 개인 수집가가 전체 80%가 넘는 13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뭘까.

일본의 사찰들은 고려의 높은 불교문화를 부러워해 고려불화를 소장하고 싶어했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의 노략질 대상이 된 이유다. 조선 시대에도 외교적 목적과 교역품으로 적지 않은 고려불화가 현해탄을 건넜다. 조선은 당시 폐불(廢佛)정책으로 불교 유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국내에는 1970년대 후반까지 고려불화가 한 점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난 6월 정우택 동국대 교수가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의 한 개인 사찰을 찾은 것은 조선 전기 불화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뜻밖의 수확인 '아미타 삼존도'는 법당의 불상 뒤쪽 유리장 안에 있었다. 사찰 주지에게 부탁해 열쇠로 유리문을 열고 손전등으로 위아래를 비췄다. 제작 시기를 적은 '화기(畵記)'를 찾기 위해서였다.

주지에게 사정을 말하고, 그림을 일단 밖으로 끄집어냈다. 세지보살 발 아래쪽에 아주 희미하게 연도(年度) 같은 게 보였다. 독일제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후 컴퓨터에서 확대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화기'를 판독했다. '지정(至正) 19년(1359년) 9월 비구 하여(何如) 등 6명이 시주해 불화를 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순금으로 군청색 비단에 그린 고려불화를 처음 발견하는 순간. 앞서 불화를 조사·촬영한 일본의 출판사는 물론, 그림을 소장한 사찰에서도 까맣게 몰랐던 사실이었다. 금니(金泥·금가루)로만 선을 그린 '금선묘(金線描)불화'는 일반 불화보다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화기가 있어 제작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고려불화는 13점으로, 가장 늦은 것은 1350년 것이었다. 1359년에 제작된 '아미타 삼존도'는 고려불화 특유의 당초원형무늬를 비롯, 원형무늬만 7종이고, 연화당초, 모란당초무늬 등 각종 당초무늬와 파도무늬, 꽃무늬 등 고려 불화 가운데 가장 많은 무늬를 담고 있다. 정 교수는 "다양한 무늬를 썼지만, 과장되지 않고 서로 잘 어울려 어색하거나 불쾌함이 없는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정우택 교수는 10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동악미술사학회 정기학술발표회에서 아미타 삼존도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