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골목길을 파고들다
입력 : 2012.11.02 23:17
'골목길 안내서' 봇물 - 익숙하거나 소박해서 무심하게 지나쳤던 숨겨진 도시 모습 소개
"팍팍한 일상 속에서 푸근한 골목길은 위로" "낡고 특별한 것 찾는 중산층의 문화적 허영"
1일 광화문에서 초록색 마을버스 '종로 9번'을 탔다. "마음이 서글플 때나/ 초라해 보일 때에는/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게요…." 라디오가 흘러간 가요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들려주는 동안 차창 밖으로 경복궁역, 효자동, 통인 시장이 스쳐갔다. 경복궁 서쪽 마을이라는 서촌(西村)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길은 구부러지면서 좁아졌다.
마을버스는 10분 만에 종점에 닿았다. '초보 골목 여행자'는 1920년대 이후 지어졌다는 생활형 한옥과 4~5층 높이의 빌라, 허름한 식당과 세련된 카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에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이내 걷게 된다. 오래된 골목과 계단이 추억을 화닥닥 깨운 것이다.
◇책, 오래된 골목길로 들어가다
'서촌방향'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다시, 서울을 걷다' '소읍기행' '서울의 숨은 골목'…. 오래된 골목길을 들여다보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 올레길처럼 작정하고 나서야 하는 길이 아니다. 익숙하거나 소박해서 짐짓 무시했던 길의 재발견이다.
'서촌방향'은 서촌에서 나고 자란 설재우가 쓴 동네 안내서다. 서촌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지적도(地籍圖)의 변화가 별로 없는 동네로 꼽힌다. 관광지가 된 북촌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덜 정돈돼 있지만 더 자연스럽다. '서촌방향'은 옛날과 지금을 사진으로 겹쳐 보여주면서 구불구불한 골목과 이야기, 사람들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여행작가 이동미가 쓴 '서울의 숨은 골목'은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딱따기를 치며 돌던 종로 순라길, "오늘이 나머지 인생의 시작"이라는 낙서가 적힌 피맛골의 탁줏집, 아랫집 지붕이 윗집 마당이 되는 한남동, 지게꾼과 헌책방이 남아 있는 동대문 등을 지나간다. 골목길이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 칭얼대는 아기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는 할머니, 구두 만드는 얘기를 하며 눈이 반짝이는 구두 가게 아저씨 등 사라져갈 풍경이라서 더 애틋하다. 한필원이 쓴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는 통영·강경·나주 등 옛 흔적이 많은 지방도시를 훑고, 이윤정의 '소읍기행'도 비슷한 맥락에서 작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나선다.
◇생활 속의 작은 여행
작은 길, 작은 동네가 사람을 끌어당긴다. 집과 집 사이, 또는 집 뒤로 난 길을 걸으며 쿰쿰하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맡고 어떤 기억에 잠긴다.
요즘 나오는 도보 기행서들은 북촌이나 인사동,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붐비고 상업화된 길이 아니라 한갓지고 사람 냄새 나는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책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은 '손때 묻은 한적함'이다. 불편하고 느리지만 삶을 지탱해준 것에 대한 향수를 머금고 있다. '서울의 숨은 골목'을 읽었다는 전윤주(29·플로리스트)씨는 "깔끔하고 반듯한 길보다는 손때 묻고 소박한 길이 더 정겹다"면서 "비탈지고 어지러운 골목길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것도 재미"라고 했다.
마을버스는 10분 만에 종점에 닿았다. '초보 골목 여행자'는 1920년대 이후 지어졌다는 생활형 한옥과 4~5층 높이의 빌라, 허름한 식당과 세련된 카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에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이내 걷게 된다. 오래된 골목과 계단이 추억을 화닥닥 깨운 것이다.
◇책, 오래된 골목길로 들어가다
'서촌방향'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 '다시, 서울을 걷다' '소읍기행' '서울의 숨은 골목'…. 오래된 골목길을 들여다보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 올레길처럼 작정하고 나서야 하는 길이 아니다. 익숙하거나 소박해서 짐짓 무시했던 길의 재발견이다.
'서촌방향'은 서촌에서 나고 자란 설재우가 쓴 동네 안내서다. 서촌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지적도(地籍圖)의 변화가 별로 없는 동네로 꼽힌다. 관광지가 된 북촌과는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덜 정돈돼 있지만 더 자연스럽다. '서촌방향'은 옛날과 지금을 사진으로 겹쳐 보여주면서 구불구불한 골목과 이야기, 사람들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여행작가 이동미가 쓴 '서울의 숨은 골목'은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딱따기를 치며 돌던 종로 순라길, "오늘이 나머지 인생의 시작"이라는 낙서가 적힌 피맛골의 탁줏집, 아랫집 지붕이 윗집 마당이 되는 한남동, 지게꾼과 헌책방이 남아 있는 동대문 등을 지나간다. 골목길이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땅따먹기를 하는 아이들, 칭얼대는 아기를 업고 자장가를 부르는 할머니, 구두 만드는 얘기를 하며 눈이 반짝이는 구두 가게 아저씨 등 사라져갈 풍경이라서 더 애틋하다. 한필원이 쓴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는 통영·강경·나주 등 옛 흔적이 많은 지방도시를 훑고, 이윤정의 '소읍기행'도 비슷한 맥락에서 작고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나선다.
◇생활 속의 작은 여행
작은 길, 작은 동네가 사람을 끌어당긴다. 집과 집 사이, 또는 집 뒤로 난 길을 걸으며 쿰쿰하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맡고 어떤 기억에 잠긴다.
요즘 나오는 도보 기행서들은 북촌이나 인사동,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붐비고 상업화된 길이 아니라 한갓지고 사람 냄새 나는 길을 따라 걷는다. 그 책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달은 '손때 묻은 한적함'이다. 불편하고 느리지만 삶을 지탱해준 것에 대한 향수를 머금고 있다. '서울의 숨은 골목'을 읽었다는 전윤주(29·플로리스트)씨는 "깔끔하고 반듯한 길보다는 손때 묻고 소박한 길이 더 정겹다"면서 "비탈지고 어지러운 골목길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것도 재미"라고 했다.
'골목길 탐방'은 생활 속의 작은 여행이다. 짐도 계획도 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넘어간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여행이라는 것은 내 마음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썼다. 오래된 골목길을 찾아 걸으면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조차 쓸모없는 것 같으면서도 유용하다.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 어느 도시보다 안동에는 막다른 골목이 발달했고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막다른 골목은 안전한 영역이자 아이들의 놀이공간이며 이웃 사람들이 만나고 나무가 지붕을 대신하는 사랑방이다…."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고 감동적"
사진가 김기찬(1938~2005)은 서울의 골목길을 일생 동안 쉼 없이 기록했다. 열화당 사진 문고 '김기찬'에 담긴 골목과 사람 풍경은 40대 이상이 겪었을 공동의 추억을 불러낸다. 흑백이었던 시절의 정물화 같지만 꾸밈없고 활기차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중림동에서 사진 속 골목길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조차 쓸모없는 것 같으면서도 유용하다.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국 어느 도시보다 안동에는 막다른 골목이 발달했고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막다른 골목은 안전한 영역이자 아이들의 놀이공간이며 이웃 사람들이 만나고 나무가 지붕을 대신하는 사랑방이다…."
◇"일상에 스며들어 자연스럽고 감동적"
사진가 김기찬(1938~2005)은 서울의 골목길을 일생 동안 쉼 없이 기록했다. 열화당 사진 문고 '김기찬'에 담긴 골목과 사람 풍경은 40대 이상이 겪었을 공동의 추억을 불러낸다. 흑백이었던 시절의 정물화 같지만 꾸밈없고 활기차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중림동에서 사진 속 골목길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예스24 도서팀 김희조 과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에서 숨겨진 골목의 모습을 붙잡아 소개하는 책, 과거 서울의 모습과 역사를 재조명하는 책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푸근한 골목길에서 팍팍한 생활을 위로받고 여유를 찾으려는 욕망"이라는 해석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불고 있는 빈티지 인테리어, 복고 패션의 유행처럼 낡고 특별한 것을 찾는 중산층의 문화적 허영"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는 "문화는 일상에 스며들어야 자연스럽고 감동적인데, 우리 문화는 전쟁과 개발 등을 거치면서 다분히 과시적이고 인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서 "골목길 여행은 양방향적인 문화 소통이라는 점에서 겉돌지 않고 삶에 녹아들 것"이라고 반겼다. 천양희 시인은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진다"(시 '오래된 골목')고 노래했다. 오래된 골목은 우리가 되찾고 싶어하는 수런거리는 뒤란, '오래된 미래'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는 "문화는 일상에 스며들어야 자연스럽고 감동적인데, 우리 문화는 전쟁과 개발 등을 거치면서 다분히 과시적이고 인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서 "골목길 여행은 양방향적인 문화 소통이라는 점에서 겉돌지 않고 삶에 녹아들 것"이라고 반겼다. 천양희 시인은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진다"(시 '오래된 골목')고 노래했다. 오래된 골목은 우리가 되찾고 싶어하는 수런거리는 뒤란, '오래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