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파워 클래식] 상처받은 근대화에 대한 반성… 다시 天國을 꿈꾼다

흔히 '제3세계'라 묶이는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에 일반적인 현상이 하나 있다. 소위 '개발독재'라 불리는 과도기를 겪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적 근대가 외부에서 이식됨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일 텐데, 그럴 경우 대개 급조된 '우상'이 만들어진다. 뒤늦어서 더욱 과도해진 근대화 이데올로기의 담지자, 곧 '개발독재자'가 바로 그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개발자였던 '파우스트'를 닮는데, 근대화 이데올로기의 의인화된 형태이자 일종의 '기능'인 그는 결코 멈추거나 뒤돌아볼 줄 모른다. 그리하여 종종 '사이비 파우스트'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칭하는 것은 그가 파우스트에 비할 때 약간 부족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에게는 존재했으나 그에게는 부재하는 어떤 것이 있다.

'부정과 반성'의 능력이 그것이다. 메피스토가 보낸 세 용사에 의해 바우키스 노인의 오두막이 불타 버린 후, 파우스트는 절규한다. "너희들은 내가 말할 때 귀가 먹었었느냐? 바꾸려고 했지, 빼앗으려던 게 아니었다. 그렇듯 무모한 짓을 하다니 저주스럽구나!" 마셜 버먼(Berman) 같은 근대론자들에게는 파우스트의 저와 같은 반성 능력이야말로 근대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된다. 거대한 바다를 메우는 위대한 개발자 파우스트에게는, 자신이 건설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자신이 파괴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바로 그 반성능력이 근대성의 희망일 터인데, 실제에 있어 한국의 모더니티는 결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종종 어떤 위대한 문학은 한 사회가 결여한 것, 한 사회가 앓아야 했으나 앓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대신 앓는다. 문학을 두고 한 사회의 '증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비유가 아닌데, 억압된 것은 어떤 방식으로건 회귀하기 마련이고, 사회가 억압한 것은 그 사회의 상징형식으로서의 문학이 대신 앓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한국적 모더니티가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반성문이다.

소록도 나환자 병원에 조백헌 대령이 새로운 병원장으로 부임해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군인답게 정의롭고 추진력이 강한 인간으로 소록도를 나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 것을 주민들에게 약속한다. 이미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1970년대 한국적 근대화에 대한 알레고리임을 감지하는데, 문제는 그가 만들겠다는 천국이 나환자들에게는 '우리들의 천국'인가, '당신들의 천국'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일제시대 주정수 원장에 의해 천국이란 항상 그것을 만든 자의 우상화를 낳고, 그런 의미에서 '당신들의 천국'일 수밖에 없음을 경험한 주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후 소설은 조백헌 원장의 근대주의와, 황장로 이상욱 등이 대표하는 우상화 공포증 간 갈등과 타협을 축으로 전개된다. 와중에 우상과 권력, 사랑과 자유, 건설과 파괴 같은 굵직한 주제들이 부각되고 성찰된다. 말하자면 60년대 이후 파우스트의 양가적 고뇌를 돌볼 틈 없이 오로지 경제성장 위주로 진행되던 한국 사회는 이청준의 이 작품을 통해 반성과 성찰의 능력을 배우고, 뒤늦게라도 앓아야 될 것을 앓는다.

소설은 건강인 서미연과 환자촌 출신 윤해원의 결혼으로 마무리된다. 이제 평상복을 입고 돌아온 조백헌이 주례다. 조 원장은 거기서 자신이 섬으로 돌아온 이유, 그리고 자신이 이 섬에 만들려던 천국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이 주민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천국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자신과 그들이 운명공동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섬의 평범한 주민이 된 그가 꿈꾸는 것은 사랑과 믿음에 기반한 운명 공동체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다소 안이한 결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토록 안이하다는 '사랑과 믿음'의 가치가 지켜진 적이 별로 없는 사회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읽는다는 일이 안이할 수는 없다. 나로서는 대학 시절부터 항상 서가 가장 빛나는 자리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던 저 '위대한 증상'의 주인이, 이제 내가 자주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데 누워 있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된다고만 말할 참이다. 다만 만약 그가 장흥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귀향과 탈향, 중심과 주변, 고도개발과 저개발 사이에서 진자 운동하는 법을 미리부터 배운 작가가 아니었다면, '당신들의 천국'이 씌어질 수 없었을 것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긴 지면을 위해 할 말을 남겨둔다.

140자 트윗독후감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천국을 약속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거야! 하지만 정작 그 타인에게 우리가 약속한 천국이 지옥이라면… 몸소리쳐진다." (트위터 응모자 HAKERS)

Yamoojunda, bbuckkong. 페이스북 응모자 신사환, Kyungsoon Choi 등 다섯 분께는 개별 통지해 선물을 드립니다. 101명 무료 동영상 강의는 휴넷(www.hunet.co.kr)에서 안내합니다.

14일 '당신들의 천국' 북콘서트

▲시간·장소: 오후 7시30분 문지문화원 사이
▲출연: 소설가 하성란, 문학평론가 우찬제 서강대 교수, 배우 김주헌
▲참가신청: 문지 블로그(http://blog.moonji.com/?p=3378)
▲문의: (02)338-7224(내선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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