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한국 신용등급 상승은 북한리스크 감소 덕분… 경제체력과 무관"

작년 8월 5일, 연간 매출액 17억달러(약 1조8600억원)인 한 미국 기업이 3주일 만에 자기 매출의 3500배나 되는 6조달러(약 6574조원)를 세계 증시에서 증발시켰다. 이 기업의 '결정'에 대해 G7 국가들은 재무장관 공동성명을 냈고 각국 정부는 긴급비상회의를 열었다. 70년 만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는 세계 2만개 기관(128개국 포함·글로벌 시장의 약 40%)의 채권(債券)신용을 평가하는 '핫 플레이어(hot player)'이다.

단적으로 올 1월과 10월에 이탈리아 등 유로존 9개국과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모두 하향 조정했다. 저성장·침체 분위기가 확연한 요즘, S&P는 글로벌 경제 현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Weekly BIZ가 미국 뉴욕 월가에 있는 S&P 본사를 찾은 날은 지난달 8일로 공교롭게 휴일(콜럼버스데이·Columbus day)이었다. 하지만 S&P 직원들은 전원 출근해서 기다란 복도 양옆의 회의실 수십곳에 모여 토론이나 회의를 하고 있었다. 23개국에 해외 지사를 둔 S&P의 직원은 6000여명. 이 중 1400여명이 신용등급 평가·조정 업무를 하는 애널리스트들이다. 은행·정부 기관 등에서 일하다가 경력직원으로 온 이들은 대부분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다.

지난해 8월 S&P CEO에 취임한 더글러스 피터슨(Peterson) 대표는 "S&P는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독립성과 정직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수천개의 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손바닥만한 천(fabric) 조각을 구성하는데, S&P는 글로벌 경제에서 그런 연결작업의 중심을 지향합니다."(※피터슨 대표는 개별 국가와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과 거시경제 분석은 개인의견이 아니라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신용등급, 경제 체력 좋아져 올린 게 아니다"

올 9월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올렸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S&P가 한국 경제의 기반을 좋게 평가해 상향조정됐다"고 했다. S&P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더블 에이(AA-)'였던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B+)으로 내려 외환위기를 심화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올렸을까? 이유를 물었더니 피터슨 대표의 답변은 의외였다. "한국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한국 경제의 강함 때문이 아니다."

―그럼 어떤 이유인가?

"한국의 신용등급 상승조정은 한국 경제나 글로벌 경제와 무관하다. 유일한 이유는 북한의 정치적 리스크가 감소했다는 데 있다. 지금 북한 체제가 앞으로 3~5년은 안정적으로 유지돼 군사 도발 행위 등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 내린 결정이다. 사실 세계경제에서 가장 힘든 유로존과 한국의 무역거래량은 한국 총무역량의 10%에 불과하다. 한국의 전체 수입규모에서도 유로존은 2% 남짓하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충격을 잘 이겨냈다는 주장은 전혀 입증된 바 없다."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의 신용등급을 추월할 가능성도 없나?

"단도적입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웃음). 한국은 지금 고령화 측면에서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일본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보다 더 많은 위기를 이겨내 여기까지 왔다. 수시로 발생하는 대지진, 1990년대 금융위기 등…. 일본은 지적재산권 강화와 강력한 제품과 서비스로 이를 극복했다. 신용등급 자체로만 보면 한국의 1인당 GDP 수준이 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호주·캐나다 같은 국가를 따라잡을 때 (신용등급 상향조정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약점을 꼽는다면?

"가계부채 문제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주로 고소득층이 무리하게 자산을 부풀려 커졌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 악화로 소비가 줄면 더 높은 실업률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이 2008~09년 경험한 소비둔화 충격이 한국에도 벌어질 수 있다. 저(低)성장에 맞서 한국 정부는 여러 정책적 지원(재정·통화정책 등)으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외환보유고도 충분하고 정부 부채비율도 낮으니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부채를 늘린다면 한국의 신용 등급은 더 낮아질 공산이 크다. 외화를 주로 단기 차입하는 한국의 은행 시스템도 신용등급 하락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 부채 갚을 능력 떨어지면 신용등급 추가 강등될 것"

―S&P 등 신용평가사들이 세계 경제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외부에 비치는 것과 우리 생각은 차이가 있다. 신용등급을 매기면 자본·금융시장이 실물경제에 자금을 투명하게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쨌든 이는 투자자와 발행자가 참고할 의견이다. 우리는 시장에 미칠 큰 영향을 감안해 경제적 안정성·유동성·정치능력·재정상황 등 40년 넘게 축적한 평가방식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한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부채를 갚을 능력이 떨어지면 신용등급을 내리는 게 당연하다."

―작년 8월 미국 신용등급 강등 결정 후 국제적 이미지가 나빠졌는데.

"이미지 쇄신을 위해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해 리스크 담당 임원 등 임원진을 모두 교체했다.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평가와 검증작업도 두배 강화했다. 모두 동일한 의미에서 한 단어를 사용하는지, 평가기준은 동일한지, 평가 배경자료는 타당한지 등을 애널리스트들이 교차 점검(cross check)한다. 또 신용등급 최종 결정에 앞서 전 세계의 애널리스트 3~7명이 화상회의 등을 열어 검증하며 타당성이 부족하면 수개월간 재조사도 한다."

―미국의 재정절벽이 실현될 경우, 미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도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신용등급을 더 내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나?

"재정절벽과 채무한도 두 가지 문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2014년 6월까지 미국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확률이 30% 정도이다. 지금은 부채가 많아도 제로(zero)금리 때문에 이자비용이 낮다. 문제는 금리가 오를 때이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 정부 총세입의 5% 이상을 차지할 때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재정절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회와 행정부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지켜본 다음 대응 방식을 검토할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에서 긍정적 측면은 에너지 붐이다. 셰일가스나 셰일유(油), 정탄(精炭) 같은 청정에너지 자원 활용 덕분에 에너지 소비가 줄어 그마나 경제성장률이 유지된다."

◇"부실한 국유 기업들이 중국 경제의 뇌관(雷管)이다"

―S&P가 유로존의 신용등급을 거듭 내려 세계 경기를 악화시킨다는 불만이 나온다.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결정은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유로존 17개국 중 15개국은 현재 부정적(negative) 전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유로지역의 핵심 문제는 단일 국가는 물론 3개국 이상 관계에서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독일, 네덜란드 등 체력이 강한 나라들이 '구제금융 피로증'(bailout fatigue)을 느끼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국채 무제한 매입 계획은 자본시장 안정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신용등급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내년 이탈리아 총선이 유로존 경제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중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는 무엇인가.

"최근 중국의 상위 107개 기업의 재무상태를 조사했는데 이 중 80%는 국유기업이다. 중국의 국유기업들은 지금 중국의 국가 신용등급(AA-)보다 한참 낮은 경우가 많다. 올 들어 기업들의 전년 대비 전체 순익률은 마이너스이다. 특히 부동산 기업은 31개 기업 중 29곳이 투기등급(BB+ 이하)이다."

―중국은 내년에 어떤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하나?

"개인 저축률이 높고 중앙정부 재정상태가 건실한 중국 지도부는 경기부양을 시행할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진취적인 재정정책과 신중한 통화정책'에 초점을 맞춰 채권매입 같은 방법 대신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더 빨리 경기부양에 나설 것이다. 중국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올라갈 수 있는 요인은 고정환율제 탈피, 자유시장 경제로의 전환, 채권 시장 활성화 등 세 가지다."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조짐을 보이는데 정부와 기업에 조언한다면.

"올해 8월말까지 미국에서 팔린 고수익 투기등급(junk) 채권 펀드 규모는 524억달러로, 전년 동기(83억달러) 대비 6배 이상 늘었다. 부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락이나 부도를 맞을 확률이 높은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 같은 불확실성 시대에선 정확한 알짜 정보가 중요하다. 지금부터 25년 전은 무역과 제조업, 15년 전은 모바일과 인터넷이 생산을 촉진했다면, 지금은 공신력 높은 정보가 생산성을 창출한다."

대침체기를 맞아 글로벌 자본시장에도 변화의 흐름이 뚜렷하다. 더글러스 피터슨 CEO는 "세계 금융계에 4개의 메가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기업들이 5년 내 갚아야 할 부채가 46조달러(약 5경3000조원)에 달해 '부채 폭탄과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가운데 30조달러는 차환(借換·빚을 내 빚을 갚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자기자본 규제 강화와 디레버리징 확대, 신용등급 강등 등으로 시장이 위축돼 은행들이 기업의 자금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둘째는 기업의 새 '자금 창출원'으로 채권 시장의 급부상이다. 전통적으로 채권에 의존해온 미국 기업과 달리 유럽 기업들은 은행권에서 총 자금의 70% 정도를 조달해왔다. 하지만 금융정보회사 '딜로직(Delogic)'에 따르면 유럽 기업이 올 1분기(1~3월)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1795억달러로 전년 대비 38% 증가한 반면, 은행대출은 45% 감소한 1129억달러에 그쳐 사상 처음 채권 대출액이 더 많았다. 피터슨 대표는 "올 8월 글로벌 회사채 발행 규모가 1200억달러로 1995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며 "철도·항만 같은 중장기 인프라 수요가 있는 국가들은 이런 새 흐름을 활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셋째는 고령화 추세에 맞춘 금융상품 위주로 바뀐다는 점이다. 최근 20년간 인기를 끌었던 헤지펀드나 사모펀드(PEF) 등이 퇴조하고 연금자산과 개인 저축률 증가에 따라 연금자산에 초점을 맞춘 금융시스템으로 재편되고 있다.

마지막은 유럽연합(EU)의 신용평가사 규제안(案) 등에 따른 시장 위축이다. 신용평가사의 경쟁력 및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채권 발행자가 3년마다 신용평가사를 바꾸도록 하는 '강제 순환제도'를 골자로 한 규제안이 유럽의회에 상정돼 있는데, 이 안이 통과되면 신용평가 시장에서 기업들이 제대로 된 채권 정보를 얻지 못해 전반적인 시장 축소와 경기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더글러스 피터슨 대표는

▶ 출생: 1958년 미국 뉴멕시코주

▶ 학력: 클레어몬트칼리지·펜실베이니아대 워튼경영대학원 졸업

▶ 경력: 1985년 시티그룹 입사, 2004~10년 일본 시티은행 회장 겸 CEO,
2011년:씨티그룹 본사 최고운영책임자(COO), 2011년 9월~현재 S&P 사장

▶ 취미: 음악 감상, 역사 유적지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