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배고픈 성장… 싼 것만 팔려 남는 게 없다

주요 백화점은 10월 매출이 작년보다 소폭 늘었다고 5일 잠정집계했다. 기존 점포를 기준으로 롯데백화점은 작년보다 1.2%, 현대백화점 1.6%, 신세계는 3.3% 증가했다. 하지만 백화점 업계는 이런 매출 증가를 "착시(錯視)현상"이라고 평가한다.

매출 증가를 이끈 품목은 아웃도어 의류와 '명품'이라고 불리는 수입 의류·시계였다.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은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가격을 올린 부분이 매출 증가로 잡혔고, 등산복 역시 백화점들이 대대적인 할인행사를 했기 때문에 매출이 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할인 행사를 하면 매출은 늘어나지만 백화점이 가져가는 마진은 줄어든다.

백화점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여름부터 백화점 매출이 전례 없이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가 집계하는 백화점 3사 매출은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작년 동기 대비)를 기록했다. 통계를 작성한 2005년 이후 가장 긴 불황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증시가 몇 차례 폭락했던 2008년에도 백화점 매출은 9월과 12월 두 달만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요 백화점의 주가는 1년 전보다 16~27%나 빠졌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는 충격은 컸지만 곧 회복했고, 카드대란(2003~2004년) 때는 20대 소비는 줄어도 중산층의 소비는 건실했는데, 요즘은 중산층까지 백화점에 안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3분기 들어 영업이익 급감

지난달 17일 신세계가 3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하자 신세계 내부에서는 연말 성과급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연봉에서 성과급의 비중이 높은 이 회사는 대리급(級)이 1000만원 이상의 연말 성과금을 받아왔다. 하지만 신세계의 3분기(7~9월) 영업이익은 작년보다 45.9%나 급감했다.

사정은 다른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도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7.1% 감소했다. 8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롯데쇼핑 역시 백화점의 경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두 자릿수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백화점들이 올가을 할인행사 기간을 작년보다 이틀 늘리는 등 할인 경쟁에 나선 것도 수익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 신세계의 경우 3분기 할인 행사를 통해 정가보다 싸게 판 상품의 비중이 전체 매출의 20.2%를 기록해 상반기보다 2%포인트 증가했다.

백화점 경기가 꺼지면서 관련 업계도 울상이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매장들은 1년에 두 차례 매장 인테리어를 바꿔왔다. 하지만 백화점 경기가 나빠지면서 9월 끝난 백화점 가을·겨울 개편 때는 공사 금액이 예년의 30% 수준으로 줄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율가씨는 "백화점 손님이 줄다 보니 예전에는 다 교체하던 옷걸이를 올해는 색만 다시 칠해서 쓰고, 매장 벽이 3개인 경우 1개만 바꾸는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아웃렛 확대, 젊은 고객 잡기

일부에서는 최근 불황을 경기가 아니라 백화점 업종의 위기로 진단하기도 한다. 백화점 매출의 중심이었던 의류 소비자를 유니클로·H&M·자라와 같은 SPA(유통·제조를 일괄 처리하는 브랜드)에 빼앗기고 있고, 명품의 경우 단독 매장·아웃렛·홈쇼핑 등 다른 유통채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와서 '아이쇼핑'을 하고 제품은 인터넷으로 사는 사람이 늘면서 백화점이 다른 유통 채널의 쇼룸(show room)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백화점들은 소형점보다는 수익이 좋은 대형점 위주로 영업망을 짜고, 수도권 외곽 아웃렛 등을 세우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올 들어 주요 백화점들이 신진 디자이너 발굴에 나선 것도 기존 제품군으로는 SPA와 차별화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젊은 소비자를 잡기 위해 대학생 마케팅 자문단을 운영하고 모바일 결제 등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하병호 사장은 직원을 만날 때마다 "젊은 고객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경청해 젊은 층의 취향을 반영한 매장 구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국대 정연승 교수(경영학과)는 "유통 트렌드가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서 있는 일본의 경우도 역세권이 대규모 몰(mall)로 재개발되면서 기존 백화점이 외부 활동의 중심으로서 기능을 잃고 위기를 맞았다"며 "국내 백화점도 일본·미국 백화점들처럼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제품 판매 같은 차별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