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견뎌냈듯 한발 한발… 히말라야 정복"

"히말라야를 오르는 길은 항암치료를 받는 것처럼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이었죠. 하지만 언젠가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항암치료를 묵묵히 견뎌냈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니 어느덧 우리는 히말라야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유방암 아줌마' 아홉 명이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일반인도 오르기 버거운 랑탕-코사인쿤드 코스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 5003m 체르코리에 유방암 생존자들이 올랐다. 이들은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항암제를 맞으며 암을 이겨낸 환자들이다. 그중에는 말기에 가까운 유방암 3기 환자도 포함됐다. 모두 한국유방암환우회 소속 합창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의 히말라야행은 작년 3월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 히말라야 가볼까"라고 운을 떼면서 시작됐다. 농반진반의 이 말이 씨가 됐다. 유방건강재단과 아모레 퍼시픽에 낸 사업계획서가 덜컥 채택됐다. 1000만원의 지원비가 나왔다. D데이는 그해 10월로 잡았다. 13박14일의 여정이다. 20여명의 환우가 지원했다. 주말마다 북한산·도봉산 등반 훈련이 이어졌다. 강원도 산악 훈련도 두 차례 다녀왔다. 도중에 건강이 악화한 사람과 개인 사정으로 장기 여행이 힘든 환우들이 빠지면서 최종 9명이 네팔행 배낭을 꾸렸다. 김명자(50), 김지윤(53), 동신영(49), 박경희(63), 윤종숙(61), 이갑녀(56), 이병림(58), 이순영(50), 주광재(61)씨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암병원 노동영 원장에게서 수술을 받았다. 노 원장은 유방암 분야 한국 최고 명의로 꼽힌다. '유방암 아줌마들'은 하루 외래 환자를 100여명 돌보고, 수술 스케줄도 빡빡한 노 원장에게 별 기대하지 않고 히말라야에 동행할 수 있는지 물었다. 바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함께 가시죠." 여기에 한왕용 산악인, 스토리 작가, 영상촬영팀이 합류했다.

히말라야 등반의 최대 복병은 고산병이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과 구토·메스꺼움이 그들의 체력을 고갈시켰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숨이 가빴다. "고산병 증세는 항암치료 받을 때의 고통과 비슷해요. 그 힘든 고통을 이겨냈기에 고산병을 더 잘 극복했을 거예요"(이병림 합창단 대표).

히말라야를 다녀오고 나서 이들의 가슴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채워졌다. "세상에 살아남는 것이 내 가족에게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갑녀).

이들은 히말라야 등반기와 암 투병기를 모아 '핑크 히말라야'(이콘 출판)라는 책을 냈다. 핑크는 유방암 조기 검진 캠페인의 상징 색이다. 히말라야 사진전도 오는 15일부터 서울대 암병원 로비에서 연다. 이들의 '핑크 릴레이'는 지난 10월 일본 나고야 근방 명산 야츠카다케(해발 2899m) 트레킹으로 이어졌고, 내년에는 남아공 킬리만자로로 향한다. 최근 일본 유방암 환우회 초청으로 도쿄 아사히홀에서 공연한 합창단원들은 조선일보와 삼성생명이 주최하는 신개념 건강강연 '헬스 오페라'에서도 합창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