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마음 달래는 드라마, 이 경상도 사나이 작품

드라마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여초(女超)' 현상이 압도적인 직업군이다. 그만큼 남성 작가는 희귀하다. 게다가 장르가 멜로라면 그 가치는 '천연기념물'급이다. 현재 15% 안팎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울랄라 부부'의 최순식(55) 작가가 바로 그 '천연기념물'이다.

7일 밤 서울 여의도 한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대한민국 유일의 남자 멜로 드라마 작가"라고 소개하며 껄껄 웃는 그를 만났다. 부부의 영혼이 바뀌는 '판타지' 설정을 남녀 심리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 '현실화'시키고 있는 그는 뜻밖에 화통한 말투를 지닌 경상도 사나이였다. "부부는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함께 살게 된다고 하잖아요. 서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영혼이 바뀌는 경험을 안겨줬던 거죠."

최 작가는 이른바 '영혼 체인지' 설정을 한국 드라마계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25% 안팎 시청률로 인기를 끌었던 2006년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가 그의 작품이다. 그의 사투리는 "빤타지"를 언급할 때마다 거칠어졌다. "생활형 멜로 드라마에 빤타지를 도입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PD들도 엄청 겁을 냈죠. 하지만 저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외계인 알프처럼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모았던 외화가 전부 빤타지였다'며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런 설정을 시도해볼 때가 됐다고 설득했습니다."

"6년의 시차를 둔 자기복제 아니냐?"고 묻자 그가 씩 웃으며 말한다. "'돌아와요 순애씨'는 젊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스피디한 코미디를 쓴다는 생각이었다면 '울랄라 부부'는 30~50대 주부들에게 결혼 생활에서 쌓아왔던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자는 기획이었어요. 솔직히 한번 써본 뒤 재미를 본 설정이라 자신감이 있었던 측면도 있었지요. 난 거짓말 잘 못해.(웃음)"

그는 경남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교보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 86년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교통사고를 내 서울 강남경찰서 유치장에서 사흘을 보내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황당하더만요. 문도 제대로 못 따서 그대로 경찰에게 붙잡힌 초보 3인조 강도, 돈 7만원 때문에 과도로 사람을 찌른 살인자, 신도들에게 거짓 설교로 수천만원을 뜯어낸 가짜 목사 등 온갖 사연을 가진 범죄자가 몰려드는 겁니다. 그 안에 인생이 있고 드라마가 있더라고요. 평소 취미로 산문을 끄적거렸던 저로서는 그 3일간 들었던 스토리들을 버려둘 수 없었죠."

이후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MBC '베스트셀러 극본 공모'에 당선되면서 전업 드라마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비도 많았다. "데뷔 초에는 신인 작가에게 일을 주는 PD가 없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사 도서관에서 하루 15시간 이상 온갖 드라마의 대본을 읽고 분석하는 고시생 생활"을 1년간 거듭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최수종·배종옥·음정희 등이 출연한 '도시인'(91~93년)의 히트는 그 열매였다.

막상 중견 작가로 자리 잡자 "이제는 아침 드라마 섭외만 쏟아지면서 또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3년간의 휴식 끝에 나온 재기작이 '돌아와요 순애씨'. 그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침 드라마를 많이 쓴 덕분에 여성 심리를 잘 파악하게 됐으니 위기가 기회였던 셈"이라고 했다.

'여인천하(女人天下)'인 드라마 작가계에서 남자로서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대본만 잘 쓰면 방송사와 제작사가 먼저 알아보고 찾아오는 세상이라 성별(性別)은 별 상관이 없다"면서 "아무래도 한국 드라마의 주 소비층이 주부들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그 심리를 더 잘 파악할 수밖에 없는 여성 작가의 약진이 지난 20년간 계속돼 온 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