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12 03:04

[어설픈 과장보다 있는 그대로… 진정성 택하는 기업들]
노키아 새 스마트폰 '루미아920'
손떨림 보정 기능 내세운 광고, DSLR 카메라로 촬영했다 발각
정보력 강한 똑똑한 소비자들… '팩트' 담은 직설 화법 선호
버거 맛본 적 없는 사람들 대상, 버거킹 '블라인드 테스트' 화제

최근 스마트폰 경쟁에서 고전하던 노키아가 지난 9월 초 새로운 스마트폰 '루미아920'을 내놨다. '퓨어뷰'라는 광학식 손떨림 보정 기능(OIS)을 적용한 카메라 기능을 내세운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노키아는 제품 출시 하루 만에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OIS 기능을 홍보하는 광고가 문제였다. 이 광고에는 여성 모델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노키아는 이 광고를 루미아920 카메라로 촬영했고 OIS 덕분에 플래시 없이도 경쟁사 제품보다 5배나 깨끗한 화질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네티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델 옆을 지나가던 차량 창문에 비친 촬영자와 그의 손에 들린 대형 렌즈교환식(DSLR) 카메라를 잡아낸 것.

광학식 손떨림 보정 기능(OIS)을 장착했다는 노키아의 스마트폰 ‘루미아920’ 광고 화면. 네티즌들은 이 사진의 가로등 빛 번짐과 해상도 등을 볼 때 해당 스마트폰으로 찍은 게 아니라고 문제를 제기했고, 노키아는 결국 다른 카메라로 찍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사과했다. /광고화면 캡쳐
노키아는 뒤늦게 "해당 광고는 루미아920으로 촬영된 게 아니며 소비자를 속일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됐다.

과자 개수까지 세는 소비자들

봉지당 1000개에 육박하는 튀긴 밥알만 한 '조리퐁' 과자의 개수를 세어 은근슬쩍 수가 줄었다는 사실을 블로그에 고발하는 소비자가 있다. 기다란 초콜릿과자 '빼빼로'가 가격은 예전 그대로인데 이전보다 날씬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무게를 달아 사이트에 올리는 네티즌도 있다.

디지털 기기 등으로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똑똑한 소비자들 앞에서 기업들의 꼼수는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려워지고 있다. 교묘하게 속이거나 적당히 포장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어설픈 과장으로 고객을 설득하려 할 바엔 차라리 날것 그대로를 보여줘 진정성으로 승부하겠다는 기업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버거킹은 태국 몽족(사진 왼쪽)과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족(사진 오른쪽) 등 태어나서 처음 햄버거를 보는 이들에게 자사 제품 와퍼와 맥도날드의 빅맥을 맛보게 하고 어떤 햄버거가 나은지 말하는 장면을 낱낱이 공개했다. /광고화면 캡처
미국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은 몇 년 전 '와퍼 버진(Whopper Virgins)'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자사 대표 상품인 와퍼 버거가 경쟁사 맥도날드의 빅맥보다 더 맛있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을 고민하던 버거킹은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다소 진부한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남달랐다. 태어나서 햄버거를 구경조차 못 해본 사람들에게 두 가지 버거를 맛보인 뒤 어떤 게 더 맛있는지 꼽아보라고 한 것이다.

와퍼 버진 프로젝트 팀은 태국의 몽족(族),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족에게 빅맥과 와퍼를 공수했다. 버거를 먹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두 버거를 맛보인 뒤 하나를 택하게 하는 모습은 화려한 편집 없이 거친 화면으로 낱낱이 공개됐다. '둘 사이의 맛 차이를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와퍼 쪽 손을 들어줬다.

이 극단적인 시식회는 제3세계 문화권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에 필적할 만한 극사실주의에 입각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호평도 받았다.

직설 화법이 소비자 설득에 효과적

도미노피자는 피자에 들어가는 원재료의 안전성과 품질에 대한 염려를 없애기 위해 미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토마토와 시금치 농장, 소 사육장 등을 돌아다니며 광고를 찍었다. 소비자들을 바깥을 볼 수 없게 만든 리무진에 태우고 광활한 목장 한가운데에 내려놓은 뒤 문을 열어 신선한 농장 환경을 공개하는 방법이었다.

'비하인드 더 피자'라는 이 광고를 담당한 존 키젤호스트는 "소비자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비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뉴욕시 건강국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 멀쩡하게 생긴 한 남자가 레스토랑에 앉아 조그만 설탕 봉지를 뜯더니만 연거푸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양쪽에 앉아 있던 남녀는 미친 사람 보듯 그를 쳐다보지만 정작 그들 앞에 놓인 소다 1병에도 10봉지에 해당하는 양의 설탕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뉴욕시는 '20온스의 소다 한 병에는 설탕 10봉지가 들어가 있다'는 자막을 흘려보내면서 '왜 설탕을 마십니까? 물이나 무지방 우유를 드세요.'라며 공익광고를 끝맺는다. 변화구보다 직구에 가까운 직설적인 광고기법이지만 소비자를 단박에 설득하는 데는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홈플러스가 솔직한 면모를 보여 화제다. 최근 홈플러스 트위터에 한 네티즌이 '전자제품은 전자전문점 말고 홈플러스에서 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자, 트위터 담당자가 "아닙니다.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에서 최저가를 검색하고 사세요."라는 파격적인 답글을 올렸다. 이 사실은 금세 '홈플러스의 패기'라는 제목으로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퍼져 나갔고 많은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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