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 삶 걸린 요양보험 인정률, 전북·부산·경남 최하위

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센터의 조사요원인 고모씨는 지난 9일 오후 치매로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한 이모(95)씨 집을 찾았다. 고씨는 할머니에게 날짜와 현재 시각을 물어보고, 아침을 먹었는지를 물었다. 기억 장애 여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할머니는 날짜만 혼동했을 뿐, 나머지는 또렷하게 답변했다. 고씨는 이어 할머니를 드러눕힌 뒤 다리를 뻗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신체 상황을 확인했다. 고씨는 칫솔을 다른 사람 것을 쓴 적이 없는지, 대소변을 할머니 혼자서 가리는지를 할머니의 아들(55)에게 묻기도 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가스불을 켜놓고 끄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족들이 늘 불안하다. 며느리에게 갖가지 이유로 폭언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 혜택 여부를 가르는 조사 항목은 104개. 그 중 기억력이나 운동 장애 등 52개 항목만 점수를 매겨 등급을 판정한다. 이 중 치매 증세에 연관된 항목은 폭언·폭행, 대소변 못 가리기 등 20여개였다.

고씨는 할머니의 치매 증상에 대해 아들의 말대로 거의 인정해 주었다. 달리 이의를 제기할 증거를 짧은 시간 내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고씨가 매긴 할머니의 1차 점수는 59점. 장기요양보험의 최하등급인 3등급(53~75점)을 받을 점수였다. 이 점수라면 요양보호사가 가정을 찾아오는 방문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할머니는 좋은(?) 조사요원을 만난 덕에 다행히 보험 혜택을 받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김모(75) 할머니는 아파트를 배회하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려는 치매 행동이 나타나는데도 "신체에 특별한 장애가 없다"며 등급을 받지 못했다. 이모(80) 할머니도 요실금으로 찬 기저귀를 스스로 교체하고, 방안에서도 화장실을 정확히 찾아가자, "기억력 저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 혜택에서 제외됐다. 이모(58·회사원)씨는 "치매 환자는 행동을 종잡을 수 없어 조사요원이 오면 오히려 묻는 말에 더 잘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매 환자들의 증상은 낮보다 밤에 더 잘 나타나므로 경증 치매 환자들은 조사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보공단의 2010년 등급 판정 불만 사례 609건 중 '경증 치매' 환자 불만이 67%(409건)로 가장 많았다.

고씨는 이어 인근의 요양원을 찾았다. 2등급 판정을 받아 요양원에 거주 중인 한 할머니(85)는 병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118점으로 등급이 1등급으로 오히려 올라갔다. 그러나 이처럼 매년 재심사를 하는 것에 대해 "왜 매년 등급 판정을 새로 하느냐"는 불만이 많다.

더욱이 치매·중풍 환자의 등급 판정은 시·도별로 차이가 커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도시에서 신청하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전국에서 요양보험 인정률이 가장 높은 곳은 경기도다. 25만여명이 신청해 14만명이 1~3등급을 받아 인정률이 59.1%였다. 반면 전북은 43.2%에 불과했다. 경기 동두천은 신청자 10명 중 7명(67.3%)이 등급 판정을 받았고, 경남 산청군은 10명 중 3명(31.3%)에 그쳐 가장 낮았다. 도시 지역은 등급 판정 받기가 쉽고 농촌 지역은 어려운 셈이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농촌 지역은 독거노인들도 혼자 거동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많고 실제 장애 여부도 주변을 통해 쉽게 파악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 지역은 다르다. 개인에 대한 정보를 주변에서 파악하기 힘들어 보호자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보니 주소를 옮겨 1~2등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선우 덕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사요원들의 조사 기법도 다를 수 있으므로 교육과 교류를 통해 점수 산정 방안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