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든 작가, 철 버리고 이번엔 소통

'훌쩍 자라 어른이 되어버린 소년에 대한 뿌듯함과 아쉬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의 최우람(42) 개인전은 이런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키네틱 아티스트(kinetic artist· 움직이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가) 최우람. 중앙대 조소과에 다닐 때부터 '기계 생명체'를 만들었다. 지난 20년간, 그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처럼 '기계 생명체가 주류인 세계'를 상정하고 스테인리스 스틸·알루미늄으로 전갈·거머리 등을 연상시키는 괴상한 생물을 만들었다. 'Ultima Mudfox' 같은 유사 학명(學名)도 마음대로 붙였다. 그렇게 그는 최우람식 '쥬라기 공원'을 구축했다.

그러나 10년 만의 국내 개인전에서 그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회적 '키워드'가 그의 작품으로 들어왔다. 기계 생명체에 대한 집착도 버렸다. 즐겨 쓰던 메탈 대신 새로운 재료를 택했다. 높이 370㎝의 시커먼 물체가 폭 5m의 날개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작품 '허수아비'(2012)는 주 재료가 전선(電線)이다. "전선을 인터넷 시대의 상징으로 봤어요. 현대사회의 신(神)은 인터넷이잖아요. 육체도, 정신도 없는 허상이지만, 참새를 쫓는 허수아비처럼 그 누군가에겐 정말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죠."

금빛 기념비 안에서 하찮은 검정 비닐봉지가 붕 떠다니는 '파빌리온'(2012) 등은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현실의 구차한 이면(裏面)을 다뤘다. 앞서 다뤄온 기계 생명체의 차가운 견고함과는 달리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 자기만의 성(城) 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소년이 한 발짝 밖으로 나와 세상에 악수를 청한 셈이다.

변화의 동력은 무엇일까. 최우람은 지난해부터 한예종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을 꼽았다. "학생들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가 예술에 대해 협소한 시각을 가졌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기계 생명체로 '엄청난 걸작'을 만들겠다며 집착하고 있더라고요."

그는 "예술에서 형태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의 감상을 조리 있게 내보이는 것도 작가의 일이라 깨달았다"고 했다.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 깨달음의 결과물이다. (02) 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