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석의 음식 공감]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 가슴을 녹인 사랑 한 그릇

톨비악(Tolbiac). 프랑스 파리 제13지구 중심지역에 있는 차이나타운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 유독 그곳을 좋아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오만한 파리지앵에 대한 일종의 소심한 항의 표시였고, 둘째는 그곳에 맛있는 쌀국수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그 집에서 어떤 베트남 이민자 연인을 보게 됐다. 그들은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대신, 쌀국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있었다. 후배 P를 보자 그 쌀국수가 생각났다. "고민이 있다"며 가게 마감 시각에 맞춰 찾아온 그를 인근 쌀국수집으로 데려갔다. P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스물아홉 살의 셰프로 무척 성실했다. 오랜만에 찾은 그의 입에서 한숨처럼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쥐꼬리만 한 월급 때문에 결혼은 엄두를 못 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겼어요. 내일모레 월차 받아서 혼인신고라도 하려 해요."

풀죽은 그에게 다음 날 여자 친구와 함께 가게로 오라고 했다. 하나뿐인 룸을 프러포즈 장소로 내줄 요량이었다. 문제는 그날 하필 단골인 모그룹의 대표 K가 룸을 예약했다는 것. 결국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약에 착오가 있으니 룸 대신 홀에 자리를 준비하면 안 되겠습니까?" 노발대발하는 그를 메뉴에 없는 최고급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로 간신히 달랬다.

예약시각. P와 여자 친구가 도착했다. 그들은 룸이 자신들을 위한 공간인 것을 알고 무척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이었다. 잠시 후 K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이제 남은 일은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어느 때보다 긴장된 마음으로 요리했고 그렇게 만든 로브스터 요리를 K에게 직접 서빙했다. 그가 음식을 다 먹었을 즈음 다시 찾아갔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사실 룸에 있는 사람은 결혼식 할 형편이 못 되는 제 요리사 후배예요.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프러포즈라도 멋지게 하라고 룸을 내줬어요." 얼마 후 P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감사 인사차 찾아왔다. 둘이 또다시 쌀국수집에 들렀는데, 절반이나 남긴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그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그런 후배를 보면서 어쩌면 음식의 맛은 혀가 아니라 가슴이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쌀국수 레시피

●재료

쌀국수 70g, 쇠고기(양지) 30g, 숙주 70g, 대파 한 뿌리, 청고추 1개, 피시소스 1큰술, 고수 잎 약간, 소금 약간

(육수용) 쇠뼈 400g, 쇠꼬리 2토막, 양파 1개, 생강 2개, 향신료 정향 3개, 통계피 1토막(5㎝)

●조리법

1. 쇠고기 육수 재료를 3시간 동안 푹 삶아 육수를 만든다.

2. 육수에 피시소스를 넣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맞춰 끓인다.

3. 숙주는 꼬리를 떼고 다듬어 씻고, 샤부샤부용 쇠고기는 삶아서 한 입 크기로 썰어둔다.

4. 대파는 얇게 어슷 썰고 고추는 송송 썰어 속씨를 털고 고수는 잘게 뜯는다.

5. 쌀국수를 끓는 물에 5분 정도 부드럽게 삶아 물기를 빼고 그릇에 담는다.

6. 쌀국수에 한입 크기로 자른 고기와 숙주를 얹고 끓여둔 뜨거운 육수를 넉넉히 부어 고추와 고수를 뿌려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