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15 03:03

[늑대 다룬 이야기 '인기']
'늑대 소년' 400만 관객 돌파, 영화·책·애니 등 쏟아져…
공포의 대상이었던 늑대, 첫사랑·가족의 일원으로 탄생
현대사회의 불통에 대한 인간과 시대, 반성의 반향

늑대 이야기가 돌진해 온다. 영화 '늑대 소년' '브레이킹 던 part2', 책 '철학자와 늑대',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 미드 '로스트 걸 2',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웹툰 '늑대 소년'…. 장르 울타리를 뛰어넘은 폭발이다.

이솝우화의 몹쓸 늑대부터 공포영화 속 늑대 인간까지, 늑대만큼 진부하고 평평한 소재도 없다. 그런데 요즘의 늑대 서사(敍事)는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 뜨면 늑대로 변하는 스토리'에서 벗어났다. 다른 각도와 깊이로 이 동물을 들여다보고 재해석해 인간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 상업적인 진화이면서 인간과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도 읽힌다.

미소년과 야성(野性)의 교배

영화 '늑대 소년'은 14일 400만 관객을 가뿐히 돌파했다. 11월 극장 비수기에 여름 성수기를 방불케 하는 흥행 속도다. 폐병을 앓는 소녀 순이(박보영)와 야수 같은 소년 철수(송중기)의 만남과 이별, 재회를 그린 이 멜로 드라마는 뻔한 상업적인 코드로 무장해 있다. 순이가 철수에게 말과 문명을 가르치면서 "기다려!" "먹어!"라며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에서는 '나는 펫'이 떠오른다. 동굴에서 순이가 "너 정말 괴물이니? 어떤 게 진짜 너니? 괴물이어도 괜찮아" 하는 대목, '기다려. 나 다시 올게'라는 쪽지대로 철수가 47년이나 그녀를 기다린다는 설정도 여성 관객에겐 황홀한 판타지다. 세월마저 비켜가는 철수의 모습은 '영원히 봉인하고 싶은' 첫사랑과 판박이다.

사진 왼쪽은 책‘우리는 늑대’의 야생 늑대. 오른쪽은 영화‘늑대 소년’의 철수(송중기). /어린이중앙·비단길 제공
스티븐 킹은 저서 '죽음의 무도'에서 "늑대 인간의 원형은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이 창조한 지킬·하이드"라고 분석했다. 모습이 변하면서 폭력적인 본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늑대 소년'과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 등 요즘 늑대 이야기들은 이 짐승을 향한 공포를 더 큰 사랑과 웃음으로 껴안고 있다. 첫사랑의 대상이거나 키워야 할 아이, 내 가족의 형태로 품는 것이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는 그러나 "'미소년과 야성의 교배'는 진화지만 결국 또 다른 반복이자 변주"라고 잘라 말했다. '타잔' '슈퍼맨' '미녀와 야수' 등이 보여준 강인한 육체와 순수한 영혼의 결합, 즉 나무랄 데 없는 남성의 이미지가 지금 소비되는 방식으로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초식남'(초식동물 같은 남자)이 늘어나는 가운데 '남성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갈망을 '미소년 늑대' 코드에 녹여 넣은 셈이다.

이분법이 무너진 세상을 향해 울다

미국 철학자 마크 롤랜스가 펴낸 '철학자와 늑대'에는 늑대를 개라고 속여 11년간 동거한 실화가 로드무비처럼 펼쳐진다. 우리가 온갖 악(惡)을 들씌웠던 늑대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악의 상징 늑대' '포식자 늑대'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혜실 경희대 교수는 "선과 악,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보수와 진보, 통치자와 피통치자, 한국인과 외국인, 정상인과 장애인, 부자와 빈자 사이의 소통이 더 절실해진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다"고도 했다. 늑대를 불러내 충격을 줘야 할 만큼 세상은 무질서하고 인간은 위선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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