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땐 금리 낮출 수 있는데… 은행들, 안 알려줘

회사원 김모(33)씨는 작년 말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2000만원을 빌렸다. 은행은 직장, 직급, 소득 등을 토대로 김씨의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금리를 연 5.8%로 결정해 주었다.

해가 바뀌고 지난 3월 김씨는 대리로 승진했고 연봉도 500만원 올랐지만 그의 대출금리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지난달 김씨는 직장 선배로부터 "승진을 하면 금리를 내려달라고 은행에 요구할 수 있다던데…"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은행을 찾아갔더니 창구 직원은 "취업, 승진, 연봉 인상, 변호사·의사 자격증 취득 등으로 신용도가 높아진 경우에는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김씨는 바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 대출금리를 0.2%포인트 낮췄고 연간 4만원의 이자를 아끼게 됐다. 김씨는 "은행에서 진작 알려줬으면 이자를 더 아낄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금리 인하 요구권, 은행이 고객에 안 알려

은행 신용대출 이용자 중에는 김씨처럼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도 이를 잘 몰라 높은 이자를 물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 요인은 은행 측이 2002년에 도입된 금리 인하 요구권 제도 자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해 실제로 금리를 낮춘 사람은 349명에 불과하다. 2008~2010년에도 금리 인하 요구권 행사자가 연평균 357명에 그쳤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에게 이 제도 활용이 잘 안 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은행 입장에서는 이자 수입이 줄어드는 일인데 열심히 알려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주요 시중 은행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금리 인하 요구권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초기 화면이나 팝업(pop-up) 화면에서 금리 인하 요구권을 바로 알려주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고, 검색을 해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외환은행 홈페이지 검색창에 금리 인하 요구권을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없다'는 설명만 나온다. 우리은행은 2003년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할 당시 보도자료 1건만 보여준다. 국민은행, 하나은행은 지난 10월에야 처음으로 안내 자료를 올렸다. 금리 인하 요구권이 도입된 10년 동안 홈페이지를 통한 안내가 사실상 없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단체 "은행이 주기적으로 안내해야"

금융감독원도 금리 인하 요구권이 사문화(死文化)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지난 7월부터 각 은행에 적극 홍보하도록 행정지도를 했지만 은행들이 말을 듣지 않자 지난 13일부터 현장조사를 벌이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을 받을 때 상품설명서에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이 적혀 있다. 내용을 잘 파악해 뒀다가 신용도가 올라갈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 문의해 금리 인하 요구권을 100%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소비자 단체는 은행이 정기적으로 고객에게 금리 인하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告知)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고객에게 금리 인하 요구권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때그때 써먹으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74%가 금리 인하 요구권 제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2006년 국감 자료)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부회장은 "대출 기간에는 분기별로, 만기를 앞두고는 3개월 전에 은행이 고객에게 금리 인하 요구권을 알리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