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경쟁제품 10개 중 3개는 중국산이 더 비싸다

지게차에 들어가는 '마스터 베어링'이라는 부품을 만들던 A사가 최근 문을 닫았다. 독일·일본 업체들이 장악한 고가 제품에 맞서 중저가 제품을 만들어 왔는데, 이마저 중국산에 밀려 거래처가 하나 둘 떨어져 나간 탓이다. 한 자동차 전자장치 업체 임원은 "문제는 중국산이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 경쟁력까지 갖춰 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오영석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5일 내놓은 '산업구조 및 산업 연관관계 개선을 통한 잠재성장력 제고 방안' 보고서를 통해 "2009년을 기준으로 한국과 중국이 공통으로 수출하는 3602개 품목 가운데 30.8%는 중국산이 한국산보다 가격이 더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2002년에는 중국산이 한국산보다 비싼 품목의 비중이 26%였는데 7년 만에 4.8%포인트가 더 올라간 것이다. 중국 제품이 품질 개선과 함께 제값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국산이 가격은 몰라도 품질만큼은 중국산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통념을 깨는 결과이기도 하다.

◇턱밑까지 올라온 중국, 멀어지는 독일

오 위원은 품목별로 수출액을 수출 수량으로 나눠 수출 단가를 구했다. 반도체를 1억 개, 2억달러어치 수출했다면 수출 단가를 개당 2달러로 보는 식이다. 이렇게 계산한 결과, 한국을 쫓아 오는 중국과의 격차는 계속 좁혀지는 반면, 한국을 앞질러 가는 선진국 독일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한국과 독일이 공통으로 수출하는 3594개 품목 가운데 64.6%는 독일산이 더 비싸다"고 밝혔다. 2002년에 독일산이 한국산보다 비싼 품목 비중은 60.8%였는데, 7년 만에 3.8%포인트가 더 올라갔다. 오영석 위원은 "수출 단가가 수출 제품의 품질을 알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지표임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우리 수출 제품의 상대적 품질이 그만큼 내려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제품의 종합적인 경쟁력을 중국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일까?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내놓은 '중국 시진핑 시대 개막과 우리 기업의 대응 전략 연구' 보고서에서 "섬유산업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경쟁력 차이는 단 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국 제품의 품질·가격·기술을 합친 것을 100으로 놓고 중국산이 몇 점인지 따져 보면 섬유는 99, 휴대폰과 철강은 93, 화학제품은 92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또 선박은 85, 자동차는 78, 디스플레이는 77, 반도체는 70 수준까지 중국 제품의 경쟁력이 올라왔다. 대한상의는 "중국 산업의 경쟁력이 주요 제품에서도 우리 턱밑에까지 추격해 왔다"고 우려했다.

중국산이 쫓아오는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첨단 제품 시장은 여전히 선진국의 텃밭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전자장치 부품 가운데 가장 첨단에 해당하는 차량 제어 반도체는 외국계 업체가 99%를 장악하고 있다. 차량 제어 반도체의 핵심인 MCU라는 부품은 현대차 공급 물량의 100%가 인피니언·프리스케일·르네사스·후지쓰 등 외국회사 제품이다. MCU를 제외한 일부 제어 반도체의 경우 국내 업체들도 국산화에 나서고 있지만, 기술과 경험이 부족해 고전하고 있다.

◇환율 더 떨어지면 무역 흑자 기조 안심 못해

한국이 수출을 늘려올 수 있었던 것은 기술 경쟁력 때문이라기보다 높은 환율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전체 교역 품목 가운데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은 품목만 골라낸 뒤, 이를 '가격 경쟁력에 의지하고 있는 제품'(핸드백이나 자동차처럼 수출 단가가 수입 단가보다 낮은 제품)과 '기술 우위가 있는 제품'(수출 단가가 수입 단가보다 높은 제품)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한국(2010년 기준)은 77%가 가격 경쟁력에 의지하는 제품이었다. 기술 우위 제품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반면 독일은 가격 우위 제품은 14%에 불과했고, 86%가 기술 우위 제품이었다. 일본은 68%가 기술 우위 제품이고, 가격 우위 제품은 32%였다.

오영석 위원은 "자동차·화학·정밀기기 등 대부분 제품에서 한국은 가격 우위에 의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환율 등 수출 조건이 불리해지면 수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달성하고 있는 대규모 무역 흑자 기조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초 기술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영석 위원은 "부품 소재 기술 개발, 제조업과 서비스업 연계를 통한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