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벽돌과 '몸'싸움 벌이다
입력 : 2012.11.17 03:14
벽돌같은 무게·두께 두꺼운 책 출판 잇따라
왜 늘어날까?… 고급인문서 타깃으로 텍스트 완성도 높이고 밀도높은 정보 한 권에
독자층 넓히는 대신 비싸도 살 독자 겨냥한 보수적 출판 전략
'벽돌책' 시대
"이게 책이야 무기(武器)야?"
최근 출간된 '혁신의 예언자'(글항아리)는 중량감이 거의 벽돌급이다. 928쪽에 두께 5㎝, 무게 1.434㎏. 가격도 4만원이라 책값치고는 비싼 편. 하지만 이 책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삶과 사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전기"라는 평을 받으며 출간 열흘 만에 900부가 팔렸다.
책이 점점 묵직해지고 있다. '마하티르'(792쪽) '막스 베버'(1008쪽) '인터넷, 그 길을 묻다'(1071쪽) '도도의 노래'(884쪽)…. 최근 두 달 새 쏟아져 나온 벽돌책들이다. 한 권에 500~600쪽은 기본. 인문과학서의 경우 1000쪽에 육박하거나 거뜬히 넘기도 한다.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은 1400년 이슬람 역사의 흐름을 1264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담아냈고, 논어(論語)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이한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는 무려 1408쪽이다.
"이게 책이야 무기(武器)야?"
최근 출간된 '혁신의 예언자'(글항아리)는 중량감이 거의 벽돌급이다. 928쪽에 두께 5㎝, 무게 1.434㎏. 가격도 4만원이라 책값치고는 비싼 편. 하지만 이 책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삶과 사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전기"라는 평을 받으며 출간 열흘 만에 900부가 팔렸다.
책이 점점 묵직해지고 있다. '마하티르'(792쪽) '막스 베버'(1008쪽) '인터넷, 그 길을 묻다'(1071쪽) '도도의 노래'(884쪽)…. 최근 두 달 새 쏟아져 나온 벽돌책들이다. 한 권에 500~600쪽은 기본. 인문과학서의 경우 1000쪽에 육박하거나 거뜬히 넘기도 한다. '한스 큉의 이슬람'(시와진실)은 1400년 이슬람 역사의 흐름을 1264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담아냈고, 논어(論語)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이한 '논어로 논어를 풀다'(해냄)는 무려 1408쪽이다.
◇벽돌책 왜 늘어나나
출판평론가인 표정훈 한양대 기초교양교육원 교수는 "책이 워낙 안 팔리는 불경기라 출간 종수 자체가 줄어든 반면 나오는 책들은 묵직해졌다"며 "출판사들이 한 권을 내더라도 무게감 있으면서 필독의 가치가 있는 책을 선별해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불경기에는 고급 인문서 타깃 독자층을 겨냥해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정 대표는 "경기가 좋을 때는 인문서도 독자층을 확장하기 위해 연성화 전략을 쓴다. 책 한권을 두껍게 내기보다는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고 글자 크기도 키워서 상·하로 분권을 한다"며 "하지만 불경기에는 반드시 그 책을 살 만한 핵심 독자를 위해 충실하고 밀도 높게 만드는 게 경쟁력 있다"고 했다.
독자층을 넓히는 모험이 아니라 타깃 독자를 지키는 보수적 출판전략이라는 얘기다. 고급 독자들은 책 한 권에서 최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얻길 바란다. 책이 아무리 무겁고 비싸도 해당 주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반드시 사서 본다는 시장원리도 숨어 있다. 주로 인문과학 서적이나 정치·사회과학, 화보집 같은 예술서적, 권위 있는 저자의 핵심 저작물, 이미 검증받은 고전의 완역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펴낸 이진숙 해냄출판사 편집장은 "앞뒤로 계속 넘겨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라 1·2권으로 나눌 수 없었다"며 "방대한 분량에 5만8000원이라는 고가(高價)인데도 2000부가 팔렸다"고 했다.
◇손해도 안 보고 자존심도 지키고
출판사 입장에선 벽돌책이 손익분기점을 내기 더 쉽다는 분석도 있다. 책 한 권당 1만원으로 책정해 '상·중·하' 세트로 내는 것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2만원으로 출간하는 게 더 많이 남는 장사다. 분권하면 대개 상권만 팔리기 때문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두꺼운 책은 원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최소 1500부는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며 "경험상 이런 책들은 대박은 아니지만 실패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혁신의 예언자'의 경우, 인건비를 제외한 원가는 2200만원. 번역료 1200만원, 종이값·인쇄·제본비 등으로 1000만원이 들었다. 강 대표는 "초판 1000부가 거의 다 팔리고 2쇄를 그만큼 더 찍었다"며 "슘페터 전기는 경제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기다려온 책이기 때문에 손해는 안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벽돌책 붐이 일종의 귀족마케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IMF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출판계에 불었던 귀족마케팅의 연장"이라며 "당시 푸른숲이 '시간 박물관'이란 책을 양장본에 고급천을 씌워 한정판으로 낸 것처럼 최대한 특별하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소장 욕구를 높이는 게 불황 시장에서 인문서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40~50대 독자가 희망
인문서 시장에서 40~50대 독자층이 두터워진 것도 '벽돌책 현상'을 부추긴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 '막스 베버'의 구매층은 절반이 40~50대 남성 독자. 강성민 대표는 "두터운 인문서는 남녀 불문, 40~50대 독자가 주로 구매한다"며 "20~30대는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베스트셀러 위주의 가벼운 독서를 하는 반면, 경쟁사회의 피로에 지친 40~50대가 인문서나 철학책, 고전을 많이 구입하면서 독서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
출판평론가인 표정훈 한양대 기초교양교육원 교수는 "책이 워낙 안 팔리는 불경기라 출간 종수 자체가 줄어든 반면 나오는 책들은 묵직해졌다"며 "출판사들이 한 권을 내더라도 무게감 있으면서 필독의 가치가 있는 책을 선별해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불경기에는 고급 인문서 타깃 독자층을 겨냥해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정 대표는 "경기가 좋을 때는 인문서도 독자층을 확장하기 위해 연성화 전략을 쓴다. 책 한권을 두껍게 내기보다는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고 글자 크기도 키워서 상·하로 분권을 한다"며 "하지만 불경기에는 반드시 그 책을 살 만한 핵심 독자를 위해 충실하고 밀도 높게 만드는 게 경쟁력 있다"고 했다.
독자층을 넓히는 모험이 아니라 타깃 독자를 지키는 보수적 출판전략이라는 얘기다. 고급 독자들은 책 한 권에서 최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얻길 바란다. 책이 아무리 무겁고 비싸도 해당 주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반드시 사서 본다는 시장원리도 숨어 있다. 주로 인문과학 서적이나 정치·사회과학, 화보집 같은 예술서적, 권위 있는 저자의 핵심 저작물, 이미 검증받은 고전의 완역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를 펴낸 이진숙 해냄출판사 편집장은 "앞뒤로 계속 넘겨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라 1·2권으로 나눌 수 없었다"며 "방대한 분량에 5만8000원이라는 고가(高價)인데도 2000부가 팔렸다"고 했다.
◇손해도 안 보고 자존심도 지키고
출판사 입장에선 벽돌책이 손익분기점을 내기 더 쉽다는 분석도 있다. 책 한 권당 1만원으로 책정해 '상·중·하' 세트로 내는 것보다 두꺼운 책 한 권을 2만원으로 출간하는 게 더 많이 남는 장사다. 분권하면 대개 상권만 팔리기 때문이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두꺼운 책은 원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최소 1500부는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며 "경험상 이런 책들은 대박은 아니지만 실패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혁신의 예언자'의 경우, 인건비를 제외한 원가는 2200만원. 번역료 1200만원, 종이값·인쇄·제본비 등으로 1000만원이 들었다. 강 대표는 "초판 1000부가 거의 다 팔리고 2쇄를 그만큼 더 찍었다"며 "슘페터 전기는 경제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기다려온 책이기 때문에 손해는 안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벽돌책 붐이 일종의 귀족마케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IMF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출판계에 불었던 귀족마케팅의 연장"이라며 "당시 푸른숲이 '시간 박물관'이란 책을 양장본에 고급천을 씌워 한정판으로 낸 것처럼 최대한 특별하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소장 욕구를 높이는 게 불황 시장에서 인문서가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40~50대 독자가 희망
인문서 시장에서 40~50대 독자층이 두터워진 것도 '벽돌책 현상'을 부추긴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 '막스 베버'의 구매층은 절반이 40~50대 남성 독자. 강성민 대표는 "두터운 인문서는 남녀 불문, 40~50대 독자가 주로 구매한다"며 "20~30대는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베스트셀러 위주의 가벼운 독서를 하는 반면, 경쟁사회의 피로에 지친 40~50대가 인문서나 철학책, 고전을 많이 구입하면서 독서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