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富國 카타르, '문화 패권' 구매 중

지난 16일(현지시각) 저녁 카타르 수도 도하. 아라비아풍 흰색 건물에 불이 켜지자 흰 두건을 늘어뜨린 남자, 검정 전통 의상 차림의 여자들이 하나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랍현대미술관 마타프(Mathaf·아랍어로 '박물관')의 기획전 '네페르티티와 차를(Tea with Nefertiti)' 개막식.

1인당 GDP 세계 2위(10만6393달러·약 1억1500만원)로 "모든 경기장에 에어컨 시설을 갖추겠다"고 약속해 '2022 월드컵' 유치권을 따낸 통 큰 나라 카타르. 2005년 설립된 QMA(카타르 박물관국)는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세계 각국 언론과 미술계 인사를 초청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 미술계 '스타'들의 각축장

이번 전시회의 큰 축을 이루는 '네페르티티'는 미인으로 소문난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왕비. 하지만 고대의 이집트 문명과 현재의 카타르는 역사적·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은 없다. 도상(圖像)을 금하는 이슬람권에선 사원의 아라베스크 문양 외에는 이렇다 할 미술적 요소도 없다. 그럼에도 카타르는 이번 전시에서 '아랍 문명의 상징'으로 네페르티티를 끌어들였다. 원유와 가스로 번 돈으로 문화를 '빌려오며' 아랍어권 국가들의 문화적 맹주(盟主)를 자처한 셈.

 

기획전에 네페르티티를 빌려온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건축 분야에서도 외인부대 '스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총인구 176만명 중 37만명만 현지인인 카타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설계자인 중국계 건축가 I.M. 페이, 프랑스의 건축 거장 장 누벨과 장-프랑수아 보댕, 영국 테이트모던을 리모델링한 헤르조그&드 뮈론 등 내로라하는 스타 건축가들이 카타르에 '작품'을 세우기 위해 줄을 섰다. 그 덕택에 2008년 3억달러(약 3200억원)짜리 이슬람미술관이 새로 지어지고, 기존 건물들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성형수술' 중이다. 도시 곳곳에서 가림막과 굴착기가 눈에 띄었다. 전통과 문화를 서서히 축적하는 게 아니라 사막 한복판에 갑자기 인공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신기루'처럼 보였다.

 

공공미술에서도 '돈의 힘'은 두드러진다. 지난해 이슬람 미술관 공원에 세워진 리처드 세라의 조형물 '7'(높이 24m), 컨벤션 센터 앞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 등이다. 내년 10월엔 이슬람 미술관 공원내 전시공간 알리와크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도 열린다.

◇카타르 王家, '예술'을 사들이다

카타르의 미술 부흥을 이끄는 인물은 알 마야사(29) 공주. QMA 총재이기도 한 공주는 크리스티 회장을 지낸 에드워드 돌먼을 미술품 자문역으로 영입해 '아트 파워'를 다져가고 있다. 돌먼은 "2030년까지 도하에 5~10개의 미술관·박물관이 지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공주는 지난해 말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을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에 사들였고, 2007년엔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를 7280만달러(약 790억원)에 구입하는 등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 '아트+옥션'지가 '2011년 세계 미술계 파워 1위'로 이 공주를 선정했을 정도. 기자회견장에서도 알 마야사 공주의 '작품 구매 리스트'에 관심이 모아졌다. 돌먼 자문역은 "고객의 작품 구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트 딜러의 불문율"이라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